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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거도 장군은 기록에 의하면 제4대 왕인 탈해이사금(57~80 재위) 때 간이라는 지위에 있으면서 변경의 관리로 파견되었다. 당시 우시산국(지금의 울산)과 거칠산국(지금의 부산 동래)이 신라와 경계를 맞대고 있어 근심거리가 되고 있었다. 거도장군은 그 나라들을 병합할 속셈으로 군사들을 시켜 매년 한 차례씩 장토 들판에서 말을 달리며 놀게 했다. 사람들이 익숙해져서 이를 마숙이라 부르며 이상하게 여기지 않게 되자 거도는 이를 틈타 불시에 군사를 내어 두 나라를 멸망시켰다. 거도장군은 거칠산국 출신이라는 이야기도 전한다. 그가 설화적인 인물이기는 하지만, 〈삼국사기〉에 6세기초 이사부가 변경의 관리가 된 뒤 그의 전략을 모방하여 가야 지역을 정벌했다는 전승이 있으므로 완전히 허구적인 인물은 아닌 것으로 생각된다.
옛날 기장군 달음산 동쪽 기슭에 쉰 살이 넘은 이 씨 부부가 살고 있었다. 늦게 본 아이는 이레 만에 말을 하였고, 일곱 살이 되자 키가 9척이나 되어 장사바위를 두 손으로 번쩍 들었다. 장사 바위골에서 아기장사가 났다는 소문이 널리 퍼지자 이웃 부족 적국의 첩자들이 아기장사를 해치려고 하였다. 부모는 자객을 피해 치마산 등성이에 있는 운장대에 아기장사를 숨겼다. 아기장사는 진계등(陣界嶝)에 천마가 나타나 그 말을 타고 놀았다. 이 무렵 진계등의 텃골에는 고씨댁 딸이 있었다. 태어나자 이레 만에 큰방 대들보에 매달려서 노는가 하면 일곱 살이 되자 뒤뜰 대밭에서 왕대를 휘어잡고 대밭 위를 날기도 하였다. 아기장사와 고씨 아씨는 진계등에서 의좋게 놀면서 힘과 기(技)를 겨루며 성장하여 마침내 부부가 되었다. 장사 부부는 변경 적병들의 노략질을 막기 위해 북쪽 큰 고개 너머에 흙으로 반월성을 쌓았다. 장사 부부의 이러한 소문이 퍼지자 여러 고을의 젊은 장정들은 너도나도 반월성으로 모여들었다. 아기장사는 장정들을 조련하여 군사로 삼고 장수가 되었다. 어느 날 이 장수는 천마를 타고 반월성에서 진계등까지 달려 장군대(운장대)의 장수바위를 겨냥해 활을 쏜 후 천마를 타고 달렸다. 장수바위에 달려와 보니 화살이 보이지 않았다. 이 장수는 천마가 화살보다 늦게 달려왔다고 분개하여 단칼에 천마를 베었다. 그런데 그제야 화살이 바위에 꽂히는 것을 본 이 장수는 억울하게 죽은 천마를 화장하여 잿들 평야에 뿌려 주었다.
자신의 명마인 천마를 죽인 장수는 비통에 빠지고 한동안 실의에 빠져 반월성을 비우고 배회했다. 이 소식을 들은 적병들은 장수 없는 반월성을 급습, 손쉽게 점령했다. 이에 이 장수는 반월성을 탈출한 군사들을 모아 진계등을 경계로 하여 천마산 쪽에 진영을 갖추고, 적병은 진계등의 서쪽에 포진하였다. 적병의 장수는 석탈해왕의 최고 명장인 신라의 거도장군이었다. 거도장군은 이미 몇 년전부터 신라와 거칠산국의 접경지역에서 무기없이 말타기 시합을 연례행사로 해와서 단순한 놀리로 고정관념화시켜버렸다. 이전 작전에서도 마술놀이를 잘하는 군사를 뽑아서 말등 뒤에 달라붙게 하여 달리게 하였다. 이 광경을 본 장수는 군졸들에게 달려오는 빈 말을 잡아오라고 명령하였다. 군졸들은 무기를 놓아둔 채 새끼줄을 들고 빈 말을 잡으려고 뛰어나갔다. 이때 신라군은 함성을 지르면서 장수의 진영을 여지없이 공격하였다. 천하의 이 장수도 온몸에 화살을 맞고 고슴도치처럼 되어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남편의 전사 소식을 들은 고씨 부인도 장군대에서 아기와 함께 죽었다. 이런 설화는 적의 허를 찔러서 정복시키는 그리스 신화의 트로이목마를 연상시키는 전략이라 할 수 있다. 이천년 전에 거도장군의 전략은 오랜세월 강자를 무너뜨리기 위한 고도의 치밀한 계산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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