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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상섭 장편소설은 추리소설인가

소설공부

by 북스톰 2026. 8. 13.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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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상섭 장편소설은 추리소설인가

 

염상섭 장편소설의 추리적 요소

염상섭의 일제강점기 하에서 발표한 대표적인 장편소설들인 『사랑과 죄』, 『이심』, 『광분』 그리고『삼대』에는 추리소설적 서사와 구성이 두드러진다. 염상섭의 소설을 읽을 때 우리는 흔히 자연주의 혹은 사실주의라는 말을 먼저 떠올린다. 그는 식민지 조선의 도시와 가족, 자본과 성, 세대와 이념의 갈등을 치밀하게 관찰하고 그것을 객관적인 문체로 재현한 작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염상섭의 장편소설을 조금 다른 각도에서 읽으면 매우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그의 소설에는 사건이 있고, 그 사건을 둘러싼 비밀이 있으며, 서로 다른 인물들의 증언과 행동이 존재한다. 독자는 처음부터 모든 사실을 알지 못한다. 인물의 말은 의심스럽고, 소문은 끊임없이 새로운 형태로 변하며, 나중에 밝혀지는 사실은 앞에서 읽었던 장면의 의미를 다시 바꾸어 놓는다. 바로 이 지점에서 염상섭 소설은 추리소설과 만난다. 물론 염상섭을 추리소설가라고 부르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그의 궁극적인 목적은 범인을 잡는 데 있지 않다. 그가 추적하는 것은 범죄보다 훨씬 큰 것이다. ‘이 사람들은 왜 이렇게 행동하는가’, ‘이 사건 뒤에는 무엇이 숨어 있는가’, ‘겉으로 보이는 현실과 실제 현실은 얼마나 다른가’​라는 질문이다. 특히 『사랑과 죄』, 『이심』, 『광분』과 『삼대』에서는 이러한 추리적 서사가 상당히 명확해진다. 이 작품들이 전반부의 욕망과 관계를 보여주는 서사와, 후반부에서 근대 경찰의 시선을 통해 사건의 전말을 드러내는 서사가 결합된 구성을 갖는다는 공통성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염상섭의 장편소설에서 독자는 단순한 독자가 아니라 일종의 탐정이 된다. 결국 그런 측면에서 염상섭 소설의추리적 요소는 분명하고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사랑과 죄』는 본격적인 범죄 서사이다.

『사랑과 죄』는 1927년부터 1928년까지 『동아일보』에 총 257회 연재된 작품이다. 주요 인물로 이해춘·김호연·류진과 지순영·정마리아 등이 등장하며, 식민지 조선의 사상과 사회적 갈등이 복잡하게 얽힌다. 그런데 이 작품에는 단순한 연애와 사상적 갈등 이상의 것이 있다. 범죄가 있다. 범죄가 발생하는 공간이 있다. 범죄를 둘러싼 인간관계가 있다. 그리고 사건의 진상을 밝혀야 하는 과정이 있다. 특히 사초전골의 마약굴에서 발생하는 살인사건은 『사랑과 죄』를 추리적 관점에서 읽게 만드는 결정적인 요소다. 연구에서도 이 작품의 범죄 서사와 공간의 관계를 따로 분석하면서, 이 사건의 장소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플롯의 심층 구조에 연결된다고 지적한다. 여기서 염상섭의 방식이 중요하다. 전통적인 탐정소설이라면 사건이 발생하고 탐정이 등장한 뒤 단서를 모아 범인을 찾아간다. 그러나 염상섭은 순서를 뒤집는다. 먼저 인물들의 사랑·욕망·돈·사상·배신을 보여준다. 그 결과 독자는 어느 순간부터 이렇게 생각한다. 이 사람의 행동에는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닐까? 바로 이것이 염상섭의 ‘탐정적 독서’를 만드는 핵심이다. 특히 살인자 정마리아라는 인물은 단순한 악녀가 아니다. 연구에서는 그녀를 식민지적 ‘모던 걸’의 표상으로 보며, 스캔들 사건 속에서 여러 세력 사이를 오가는 인물로 분석한다. 따라서 정마리아를 읽는 독자는 끊임없이 그녀의 행동을 해석해야 한다. 그녀는 누구의 편인가? 그녀의 말은 진실인가? 그녀가 감추는 것은 무엇인가? 그녀가 어떤 사람에게 접근하는 이유는 사랑인가, 돈인가, 정치적 목적 때문인가? 이 질문들이 바로 추리소설의 질문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작품의 공간이다. 사초전골의 마약굴 같은 공간은 단순히 어두운 장소가 아니다. 그것은 도시의 표면에서 밀려난 인간들이 모이는 장소이며, 그곳에서 범죄와 욕망이 교차한다. 연구에서도 이 공간이 식민지 도시 개발에서 소외된 장소라는 점에 주목한다. 따라서 독자가 범죄의 진상을 추적하면 할수록 식민지 조선이라는 사회의 구조까지 함께 발견하게 된다. 범죄를 추적했는데 사회의 진실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것이 『사랑과 죄』가 일반적인 추리소설과 다른 지점이다.

 

 

『이심』은 소문에 의한 탐정적 추리소설

『이심』은 1928~1929년에 연재되고 1929년에 단행본으로 나온 장편이다. 『이심』의 추리적 성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건’보다 ‘소문’에 주목해야 한다. 추리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실 그 자체가 아니다. 독자가 사실에 접근하는 과정이다. 범인이 누구인지 알려주지 않고 여러 단서를 흩어 놓듯이, 『이심』에서도 인물들의 관계와 여성에 관한 소문이 먼저 유통되고 그 소문의 진위를 독자가 판단하게 된다. 연구자들은 『이심』에서 여성에 대한 스캔들이 단순한 소재가 아니라 서사를 움직이는 원리가 된다고 분석한다. 특히 사건의 이면에 감춰진 진실을 폭로하기 위해 스캔들이 활용되고, 『이심』에서는 그 스캔들 자체가 하나의 현실을 만들어낸다고 본다. 이것은 매우 추리소설적이다. 추리소설에서 소문은 증거가 아니다. 그러나 증거를 찾게 만드는 출발점이다. 예를 들어 어떤 인물이 어떤 여성과 관계가 있다는 소문이 등장했을 때 독자는 즉시 질문하게 된다. 그 소문은 사실인가? 누가 이 소문을 퍼뜨렸는가? 소문을 퍼뜨려 이익을 얻는 사람은 누구인가? 소문의 대상이 된 인물은 왜 침묵하는가? 이 순간 독자는 이미 탐정이 된다. 더 흥미로운 것은 소문이 사실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실을 가린다는 점이다. 염상섭은 이 장치를 통해 식민지 사회의 인간관계가 얼마나 불투명한지를 보여준다. 『이심』에서 제목의 ‘두 마음’이라는 의미 역시 이러한 추리적 독법과 연결해서 읽을 수 있다. 인물은 하나의 얼굴을 가지고 있지만 사회적으로 보여주는 얼굴과 실제 욕망은 다르다. 따라서 독자는 인물의 말보다 행동을 믿어야 한다. 이것은 탐정소설의 기본 원리와 정확히 닮아 있다. 말은 위장일 수 있지만 행동은 단서가 된다. 결국 『이심』의 추리적 의미는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데 있지 않다. 소문과 욕망과 인간관계 속에서 ‘진실이라는 범죄 현장’을 찾아내게 한다는 데 있다.

 

 

 

3. 『광분』, 살인사건에 대한 추리적 구성

소설가 염상섭이 1929년 10월 3일부터 1930년 8월 2일까지 연재한 장편 「광분 (狂奔)」에도 추리적 요소가 나온다. 『광분』은 네 작품 가운데 추리소설적 성격이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작품 가운데 하나다. 작품은 민병천 가문을 중심으로 김숙정, 민경옥, 주정방, 변원량 등의 욕망이 충돌하면서 파국으로 치닫는다. 특히 가족 내부의 성적·경제적 갈등이 사건의 원인이 되고, 민경옥의 죽음 이후에는 앞부분의 사건들을 다시 해석해야 하는 추리적 국면이 만들어진다. 실제로 『광분』의 후반부가 민경옥 살인사건을 밝혀 나가는 추리소설적 분위기를 보인다. 그렇다면 염상섭은 왜 앞부분에서 그렇게 많은 연애와 욕망을 보여주었을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독자가 나중에 그것들을 모두 단서로 다시 읽게 만들기 위해서다. 이것은 추리소설의 매우 고급스러운 기법이다. 처음 읽을 때는 아무 의미 없어 보였던 인물의 행동이 사건이 발생한 뒤에는 갑자기 중요한 증거가 된다. 가령 누군가의 방문, 특정한 사람과의 관계, 돈의 이동, 가족 내부의 갈등 등이 처음에는 통속적인 가족극처럼 보인다. 그러나 살인사건이 발생한 뒤 독자는 앞의 모든 장면을 다시 생각한다. ‘저 장면이 혹시 범죄의 전조였던 것은 아닐까?’ 이것이 소급적 추리다. 염상섭은 독자에게 사건이 발생하기 전부터 이미 단서를 제공하지만, 독자가 그것을 단서라고 인식하지 못하도록 한다. 이런 의미에서 『광분』은 단순히 살인사건을 삽입한 사실주의 소설이 아니다. 앞부분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범죄의 전사(前史)로 바꾸어 버리는 작품​이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공간이다. 연구에 따르면 민병천의 집은 한옥과 양옥이 분리된 이중적 공간으로 구성된다. 이것은 추리소설적으로 읽으면 상당히 의미심장하다. 공간이 둘로 나뉘어 있다는 것은 삶도 둘로 나뉘어 있다는 뜻이다. 겉으로 보이는 가족과 감춰진 가족, 공식적인 관계와 비밀스러운 관계,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욕망과 은밀한 욕망이 한 집 안에 동시에 존재한다. 따라서 집 자체가 하나의 밀실처럼 기능한다. 그리고 살인사건이 발생하면서 독자는 그 밀실의 구조를 다시 탐색하게 된다.

 

 

 

『삼대』, 누가 조의관을 죽였나

『삼대』는 1931년 『조선일보』에 215회 연재된 작품으로, 조의관·조상훈·조덕기의 삼대에 걸친 가족의 몰락을 그린다. 작품은 사실주의 사회소설의 대표작으로 평가되며, 복잡하면서도 치밀한 사건 전개가 중요한 장점으로 평가된다. 『삼대』의 추리적 요소는 『광분』과 다르다. 『광분』의 핵심 질문이 ‘누가 죽였는가?’ 에 가깝다면, 『삼대』의 핵심 질문은 ‘누가 무엇을 감추고 있으며, 돈과 권력은 누구의 손으로 이동하고 있는가?’ 이다. 즉 『삼대』는 살인 없는 범죄소설처럼 읽을 수 있다. 조의관은 재산과 가문을 지키려 하고, 조상훈은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이면서도 방탕한 생활과 축첩으로 재산을 소모한다. 조덕기는 그 사이에서 가문의 재산과 질서를 지키려 한다. 독자는 여기에서 자연스럽게 ‘돈의 이동’을 추적하게 된다. 누가 돈을 가지고 있는가? 누가 돈을 원하는가? 누가 돈을 빼내려고 하는가? 누가 다른 사람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는가? 결국 재산을 소유한 조의관의 죽음으로 상속과 재산 배분 그리고 경성 경찰의 수사 등이 이루어진다. 최참봉이나 수원댁이 비소로 조의관을 독살을 시킨 것으로 추측되지만 경찰의 수사 결과는 독자들에게 공개되지는 않는다. 결국에는 그 경제적 이해관계가 인간관계를 어떻게 변화시키는가? 이것은 추리소설에서 범인의 동기를 추적하는 방식과 놀랍도록 유사하다. 『삼대』의 인물들은 자신의 진짜 욕망을 그대로 말하지 않는다. 그래서 독자는 말과 행동 사이의 차이를 읽어야 한다. 특히 조상훈과 조덕기, 김병화 등의 관계를 따라가면 독자는 단순한 가족소설을 읽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가진 인물들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를 예측하는 게임에 참여하게 된다. 이 때문에 『삼대』의 사건 전개가 치밀하다는 평가를 받는 것이다.

 

 

 

작품들과 염상섭의 추리 방식

이 네 작품을 하나의 연속선 위에 놓으면 매우 흥미로운 변화가 나타난다. 『이심』에서는 소문 → 의심 → 진실 추적 그리고 『사랑과 죄』에서는 욕망 → 범죄 → 사건의 진상 추적이 나타난다. 또한 『광분』에서는 가족의 욕망 → 살인 → 수사와 진상 규명이 드러난다. 마지막으로 『삼대』에서는 가족과 돈 → 숨겨진 이해관계 → 사회적 진실 추적이 중요시된다. 즉 염상섭은 점차 추리의 범위를 확대한 것이다. 처음에는 한 사람에 관한 소문을 추적하다가, 『사랑과 죄』에서는 범죄의 진실을 추적하고, 『광분』에서는 살인의 배후를 추적하며, 『삼대』에서는 마침내 한 가족과 사회 전체의 숨은 구조를 추적한다. 이것이 염상섭의 추리소설적 서사가 가진 가장 중요한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염상섭은 당대사회 미스터리로 보았다

염상섭 소설의 가장 놀라운 점은 이것이다. 그에게 식민지 조선 자체가 하나의 미스터리였다. 겉으로는 근대화되고 있었다. 전차가 다니고, 양옥이 들어서고, 신여성이 등장하고, 새로운 교육과 사상이 유입되고, 자본주의적 경제활동이 확대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안을 들여다보면 전근대적인 가족관계, 돈과 성을 둘러싼 욕망, 식민지 권력, 사회적 위선이 뒤엉켜 있었다. 『광분』의 양옥과 한옥이 결합된 공간은 이러한 식민지 도시의 이중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연구자들은 이를 식민지 도시의 ‘이중 구조’로 분석한다. 그러므로 염상섭의 독자는 단순히 친일파, 사회주의자 혹은 지식인 등이 인물의 이야기가 아닌 이 모든 인간 관계를 만들어낸 사회의 구조는 무엇인가에 초점을 두고 소설들을 일거야 할 것이다. 염상섭은 탐정소설가가 아니다. 그러나 그의 장편소설 가운데 특히 『이심』, 『사랑과 죄』, 『광분』 그리고 『삼대』를 추리의 관점에서 읽으면 개인의 스캔들을 추리하는 소설 보다는 사회 전체를 추리하는 소설로 나아가는 과정​으로 읽을 수 있다. 그것이 염상섭의 장편소설을 오늘날 다시 읽어야 할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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