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대>의 조의관을 누가 죽였나?

조의관은 누구인가?
삼대의 조부에 해당하는 조의관이라는 인물은 시대착오적이며 훼손된 욕망을 타락한 당대(을사년에서부터 30년대까지)에서 추구한다. 말하자면 조의관의 아이러니한 욕망실천이 아들과 손자 그리고 주변인들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이때 조의관의 정체성이 바로 삼대를 형상화한 중요한 요소가 된다고 할 수 있다. 조의관은 작중에서 몇 가지 주요 행위에 집중한다. 그것은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그 욕망실천에 주변인들이 깊숙하게 관계되어 있다. 조의관의 욕망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그의 대표적인 행위들을 세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 행위에서 조의관이 주변인들에게 주는 일방적인 명령뿐만 아니라 양자간의 상호적인 관계가 발생되기 때문이다.
첫째, 조의관은 가문 번창을 위해 다른 집안의 족보를 사고 그 집의 봉제사를 한다. 또한 그는 거금 이 십만 냥을 주고 다른 집안의 대동보소를 사서 맡는다. 이러한 시대착오적인 매매에 최참봉, 조창훈, 지주사가 실제로 심부름을 하고 매당과 그의 남편이 개입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조창훈은 족보와 대동보소를 사는 일에 관여하면서 업무수행비를 떼어먹은 일로 조상훈과 다투기도 한다.
둘째, 조의관은 지주로서 소유 농토를 늘리고 근대식 정미소를 운영하며 은행의 화폐관리를 통하여 재산을 증식한다. 그가 직접 운영하는 남대문 안의 대성 정미소는 스스로 전표를 발행하고 수익금을 은행에 재투자하여 이자를 늘리는 방식이므로 근대식 개념의 사업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근대식 자본가인 조의관을 대신하여 조상훈과 지주사 등이 대리 업무를 보기도 한다. 조의관은 근대적 개념의 사업을 하며서도 주변인을 전근대적인 노예처럼 부리는 모순을 보여준다. 때문에 조창훈과 최참봉 등은 불만을 드러낸다.
셋째, 조의관은 사십 여세에, 을사년 당시 사백 원을 들여 차함(借銜)으로 의관 벼슬을 사서 신분상승을 도모했다. 차함이란 실제로 맡아서 하는 일은 없으면서 그 직함만 빌려 가지는 벼슬을 이르는 것이다. 의관(議官)은 칙임관, 재직자, 국가유공자 및 정치, 법률, 이재에 대한 학식이 풍부한 사람으로서, 내각회의를 거쳐 내각총리대신의 주천에 의하여 칙선(勅選)으로 임용되었다. 그런데 을사년에 외교권을 잃고 경술년에 대한제국이 망한 그 시기에 조의관은 구한말의 벼슬을 산 것이다. 작중에 벼슬을 사는 과정에서의 거간꾼이나 소개자가 은폐되어 있지만 벼슬을 사는 과정에서의 대인관계나 심부름 등을 조창훈, 지주사 그리고 최참봉 등이 수행했다.
넷째, 그는 지역유지가 되고 나서 만년에는 근대적 지위인 정총대(町總代)를 지냈으며 일본경찰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여 방면위원을 역임한다. 소위 정총대는 조선총독부 산하의 준행정기관의 직책으로 오늘날 통장 정도로 볼 수 있다. 정총대는 유력민간인이 맡기도 했으므로 조의관은 친일 행사에도 참여하여 가문을 빛내기 위해 활동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과소비는 집안사람들의 미움을 샀다.
조의관이 몸담았던 정총대 직위는 경성부의 행정보조기관의 직위이다. ‘경비조차 경성부에서 부담하지 않아 정총대가 자기 주머니를 털어가며 행정 보조업무를 시행했다. 그들이 총대업무를 수행한 것은 지배권력과 연결을 위해서였지만 대체로 활동성과는 미비했다.’ 조의관이 일본의 직위를 사고 또 자기 큰돈을 써가면서 자신의 지위를 높이는 소위 신분상승 및 지위 유지를 도모하는 정총대 자리를 소개한 인물이 작중에는 은폐되어 있다.
다섯째, 아들 상훈을 미국으로 유학시키고 손자 덕기를 일본에 유학 보낸다. 조의관은 근대교육을 받은 자식에게 구시대적 가치를 강요했기 때문에 자손유학이라는 교육 투자에는 결과적으로 실패한다. 이때 유학자금 송금이나 전신환 문제 그리고 유학생의 마중과 배웅 등의 잔 심부름을 지주사나 조창훈 등이 수행한다.
여섯째, 조의관은 본처와 사별하고 며느리보다 다섯 살 어린 수원집을 이만 냥을 주고 첩으로 들여앉힌다. 그리고 그녀와의 사이에서 지금 네 살이 된 딸, 귀순이를 낳았다. 그는 후사를 얻는 일이 곧 가문을 번창시키는 일이라고 믿는다. 조의관은 아들을 얻으려 했으나 수원집은 딸을 낳고, 사당지기 겸 금고지기의 자리는 결국 덕기에게 돌아갔다. 그런데 수원집을 소개한 사람은 다름 아닌 최참봉이다.
일곱째, 조의관은 경성 시경의 기무라 고등경사와 같은 일본인 경찰간부를 가끔 만나 당대의 권력층과 인맥관계를 유지한다. 그는 정총대나 방면위원 등을 지낸 공직자라는 배경과 지역 유지라는 타이틀을 달고 손자인 덕기를 시켜 일본어 통역을 하게하여 일본인들과 친분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조의관과 기무라와의 관계는 조의관이 뇌물이나 금전을 제공하는 관계로 유추할 수 있다. 일본 경찰에게 뇌물을 주는 것도 가족들에게는 부정적이었다.
여덟째, 그는 아들과 손자를 포함하는 식솔을 가부장적 권위로 통제하였다. 그는 제사를 거부한 상훈을 배제하고 손자 덕기에게 제사절차를 가르치며 훈계로 식솔들을 통솔한다. 가족들의 정보나 움직임은 지주사나 최참봉 그리고 수원집을 통해 늘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있다.
아홉째, 조의관은 근대적 자본 축적의 대상인 화폐에 의해 부를 축적한 사람이다. 당시 이만 냥을 근대적 화폐인 사백 원으로 환전하는 방식으로 구시대 가치를 근대식 가치로 바꾸어 은행에 예금하고 투자한다. 그는 근대적 화폐가치와 환전개념을 인식하고 투자하여 재산 증식을 꾀한 것이다. 조의관은 상당한 재력을 바탕으로 축첩, 자손의 유학비용, 벼슬매입과 족보 사들이기, 친일 직위 활동 등의 거금을 지출한다. 대략적인 조의관의 재산은 유서에 자세하게 드러난다. 봉건적 세계를 고집하면서 근대적 성공을 지향하는 그의 이중성은 그의 주변인들과 마찰을 빚는다. 시대착오적인 조의관은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서 주변인들에게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게 된다. 결국 이러한 이중성은 식솔들에게 반감을 사거나 반대급부를 야기시킨다. 조의관의 이중성 그리고 주변인들과의 대립과 배신은 결국 그의 독살로 이어진 것이다.

조의관 살해 용자들
살인 용자들은 작중에서 의심이 갈만한 사람들로 다음과 같다. 수원집, 최참봉, 조창훈, 지주사 등으로 요약된다.
수원집
수원집은 겉으로는 조의관의 첩이지만 실제로는 매당과 최참봉 등과 긴밀하게 연결된 인물이다. 수원집 역시 조의관에게는 늘 수동적이다. 그러나 자신보다 다섯 살이 많은 덕기모친과 사사건건 갈등을 빚는다. 그녀는 어멈이 최 참봉의 천거로 들어오고부터 수원댁과 그녀가 한편이 되어 숙덕거리고 또 대문 안팎에서 최 참봉과 수군거린다. 이러한 모임을 통해 조의관 집 정보를 최참봉을 통해 매당집으로 보낸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급한 일이 있는 경우에는 수원집이 직접 매당을 찾아가기도 한다. 하지만 그녀가 진정 원하는 것은 돈이다. 수원집은 조의관에게 공을 들여 자신의 재산을 늘리고 싶어 안달이다. 그러나 그녀는 유산 상속의 내용을 대충 알고는 실망하고 변한다. 그녀는 최참봉과 조창훈, 어멈 그리고 매당이 관계된 일종의 음모에 가담하게 된다. 수원집 혹은 어멈이 조의관의 탕약에 비소를 넣은 사람으로 볼 수 있다. 조의관이 건강해서 자신에게 재산을 챙겨줄 수 있을 때와는 국면이 상당히 변했고 그에 따라 수원집도 변모한 것이다.
그녀는 조의관 사후에 덕기 몰래 금고를 열어 재산을 가로채거나 유언에 명시된 자신 재산을 고치려 했다. 그러나 덕기에게 걸려 실패하고 만다. 이처럼 수원집은 유서를 훼손하거나 재산을 강탈하려는 의도를 보임으로써 살인자의 가능성을 높였다. 그녀는 조의관 사후, 국면이 전환되자 조덕기에게 떼를 쓰면서 유산상속을 더 받아내려고 애를 쓴다. 수원집은 자신의 당연한 몫을 주장하지만 조덕기와 지주사는 그녀의 속셈을 알고 있다. 지주사는 주변인 중 가장 무서운 위인으로 수원집을 지명하여 덕기에게 알려준다. 사실 초상 이후 수원집은 매당과 내통하며 자신의 유산 상속금 250석이라는 것을 알린다. 매당은 그 다음의 음모에 착수한다. 그러나 수원집은 살해 용의자로 수사받기 위해 구속된다. 금천 주임은 중독 사건은 수원집 일파를 사법계에 맡겨서 취조하게 한다. 구속된 수원집은 최종적으로는 행동이 구석되어 풀려나지 못한다.
최참봉
최참봉은 수원집을 소개한 사람으로 조의관에게는 어느 정도 공로를 인정받은 아랫사람이다. 놀음을 좋아하는 한량이고 부업으로, 뚜쟁이나, 땅 중개 같은 부업도 닥치는 대로 하는 사람이다. 작가의 설명에 의하면 최참봉은 한 마디로 여자소개, 땅소개를 하는 전문적인 뚜쟁이다. 그는 매당집의 남편 혹은 뒷배를 봐주는 사람하고도 연결이 되어 있는 위인이다. 또한 조의관에게 수원집을 천거했지만, 조상훈이나 지주사에게 있어서 최참봉은 못 믿을 위인이다. 조의관의 입장에서도 최참봉은 조창훈이나 지주사보다는 신뢰가 덜 가는 사람이다. 유산분배 내용을 보면 창훈, 현금 500원, 지 주사, 현금 500원인데 반해 최 참봉 현금 300원으로 적혀있다. 그만큼 그는 조의관에게 충성도나 신뢰도가 크지 않는 인물이다. 작품 모두에서 최참봉은 조의관에게 충성한다. 뚜쟁이로서 수원집을 소개하고 어멈도 천거한다. 이렇게 조의관의 명을 따르던 최참봉은 수원집을 통해 조의관의 집에서 돈을 뜯어내려하게 됨으로써 상당량 변모한다.
"애초에 최 참봉이라는 자가 수원집과 한통이 되어서 한밥 먹어보자고 계획적으로 수원집을 들여앉힌" 것을 알게된 조덕기는 조의관이 중병을 앓게 된 것을 창훈이 앞장을 서고 최 참봉은 수원집을 충동한 것도 알아차리게 된다. 한편 매당의 심부름꾼으로 최참봉은 충실한 역할을 수행한다. 매당이 수양딸, 조카딸 등의 세간을 내는 일을 할 때마다 최 참봉이 심부름을 한다. 최참봉은 조상훈과 김의경을 화합을 적극 권유하고 잔 심부름도 하게된다. 매당이 신접살림에 필요한 물품구매 청구서 한 묶음을 상훈 앞에 내놓으면 그는 펴보지도 않고 그대로 집어서 최 참봉을 주며 덕기에게 갖다가 주라고 명한다. 최참봉은 이처럼 온갖 잡일의 심부름을 도맡아한다. 심지어 매당의 심부름을 하고 조상훈에게 김의경이라는 여학생을 첩으로 들여앉히려고 한다.
결국 최참봉은 작중에서 그 인물의 기능이 변화한다. 그는 조의관의 심부름꾼에서 매당의 정보원 같은 존재로 변한 것이다. 그리고 조의관의 비소 살인사건에 연루된다. 조의관이 죽은 후에는 조상훈에게 김의경을 첩으로 소개하는 음모를 꾸미는 매당 일파에 속하게 되어 권유자의 기능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의 역할 변화는 부정적인 기호를 발생시켰다.
지주사
지주사는 원래 조의관의 친구였다. 소위 주사는 이전에, 벼슬이 없는 남자를 점잖게 대접하여 이르던 말에 불과하다. 오늘날의 6급 공무원 주사와는 다르다. 그는 조의관을 오랜 세월 모셔온 지주사는 작중에서 조의관의 잔심부름을 해주는 인물이다. 그와 상대격 인물로는 최참봉이 있다. 그런데 최참봉은 창훈과 함께 행동하면서 지주사를 낮추어본다. 참봉(參奉) 조선 시대에 여러 관아에 속했던 최말단직의 종구품 벼슬이기 때문에 지주사를 아래로 보는 것은 당연했다. 지주사는 조의관의 충직한 수동자이다. 구두쇠였던 조의관은 60먹은 지 주사 한 사람 외에는 군식구를 두지 않았고, 집사격인 지주사는 조씨 집안의 대소사를 도맡아 하는데 정미소의 일과 소포를 부치는 일 등의 잡무를 처하게 했다. 조의관은 유언으로 자신이 상을 당하면 지주사에게 맡기라고 했다. 그리고 날마다 지 주사는 아랫방 마루 안에 놓인 약장 앞에서 아들 낳을 약을 짓기느라고 매달려 있었다. 조창훈과 최참봉이 감히 들어가지 못하는 조의관의 사랑을 늘 지주사가 지키고 있는 것이었다. 조의관이 다친 이후 ‘지주사는 종일 영감 옆에 앉아서 허리와 가슴에 찜질을 갈아댔다. 가슴에는 폐렴이 될 염려를 하곤 했다. 이처럼 지주사는 변화하지 않고 보수자로서 조의관을 지킨다.
그런데 조의관의 ‘병이 차차 눈에 안 띄게 침중하여 들어갔고, 지 주사, 조창훈, 최 참봉 등은 밤중까지 안방에 들어와 살다시피 되었다. 그러나 영감은 병이 더하여 갈수록 아들은 대면도 하기 싫어했다. 결국 조의관은 지주사를 가장 신임한다고 할 수 있다.
지주사는 진심으로 와병중인 조의관을 동정한다. 그는 "20년 가까이 노영감님 옆에 있다가 입원까지 하신 걸 보니....허어. 내가 먼저 가야 할 걸."이라고 하며 충정심을 드러낸다. 보호자로서의 역할을 하던 지주사는 조의관 사후에 조덕기를 지원하고 조의관의 유지를 받들라고 권하는 인물의 기능을 한다. 조의관 사후에 조덕기는 바깥일은 지 주사와 정미소의 지배인에게 맡겨놓기로 결심한다. 이처럼 조의관과 조덕기의 신임을 한몸에 받고 있는 지주사는 살인용의자 중 가장 의심이 약한 인물이다.
조창훈
조창훈은 심부름만 하는 것이 아니고 조의관의 돈을 중간에서 착복한다. 그리고 그것을 조상훈이 눈치채고 있다. 하지만 조창훈은 한사코 자기의 착복을 부정한다. 그런 과정을 통해 조의관의 압박이 가해지자 조창훈은 변하게 된다. 조의관은 이기적인 집착으로 오히려 조창훈을 위시한 자식들과의 관계를 서운하게 만들고 조창훈과 식객들로 하여금 수원 집을 들쑤셔 집안을 해체시키는 음모를 조장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조창훈은 조의관이라는 숙부에 대해 부정적으로 변모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조의관 살해사건을 전후로 조창훈의 역할이 또 다시 변하게 된다. 삼대의 조의관 살해 은폐 사건은 광분의 경우와 매우 흡사하다. 광분에서 민병천이 자신의 딸을 자신의 부인이 죽인 것을 숨겨준 것처럼 삼대에서도 조의관 살해사건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서 조창훈의 시신해부 반대를 아들 조상훈과 손자 조덕기가 묵인하기로 한다. 그럼으로써 가족과 친지 의해서 살인이 은폐되는 것이다. 조창훈은 조의관의 대리인으로서의 영향자의 기능을 하지만 결국 최참봉과 수원집과 내통하면서 살인사건의 은폐자로서 변화한다. 이 경우 인물의 의지에 의한 은폐자로서의 정체성을 갖게 된다고 할 수 있다.
나의 추리
경찰에서 밝힌 바와 같이 조의관은 그가 복용한 한약에 비소라는 독이 들어있어서 한마디로 그는 독살된 것이다. 조의관이 넘어지면서 내실에 들어가서 지주사만이 약을 짓고 복용하게 했지만 수원집이나 조창훈 그리고 최참봉도 내실에 드나들기는 했다. 그리고 지주사가 졸거나 없는 동안에는 누구든지 탕약에 독을 탈 수 있었다. 작가 염상섭은 그 인물을 생략하고 독을 탄 범인을 조덕기와 같은 인물로 하여금 추리하고 밝히지는 않았다. 그런데 조의관과 그 주변 인물들 간의 얽히고설킨 인간 이면의 관계망이 삼대가 지닌 사회역사적 시각과 개인의 인식의 위에서 다루어진다면 일제강점기의 근대화되는 이땅의 고통이라는 거대한 사회적 주제로 마무리되기 쉽다. 그러나 추리소설적 측면에서 본다면 염상섭이 마지막에 일본 경시청에서 풀려나지 않은 최참봉과 수원집으로 상정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추리르 하게된다. 최참봉과 수원집은 내연관계의 사람들로 보이고 조의관이 수원집의 면전에서 또 다른 첩을 두어 아들을 낳고 싶다고 말했으며 그녀에게 돈을 충분히 주지 않은 점에서도 미움을 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미움이 점점 커져서 최참봉과 밀약을 하거나 공모하여 조의관의 탕제에 비소를 몰래 넣었으리라는 추측이 가장 가능성이 높다고 하겠다.
| 삼대의 숨은 갈등에 대한 추리 (0) | 2026.08.17 |
|---|---|
| 추리소설의 베스트 트릭 10가지 (0) | 2026.08.16 |
| 염상섭 장편소설은 추리소설인가 (0) | 2026.08.13 |
| 한국추리 작가 정명섭에 대하여 (2) | 2026.08.12 |
| 김성종, 한국 추리문학의 거장, (0) | 2026.08.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