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가시노 게이고의 《가공범》

범인을 만들어내는 소설
히가시노 게이고의 《가공범》은 일본어 원제 《架空犯(かくうはん)》으로서2024년 11월 1일 출간된 작품이며, 《백조와 박쥐》에서 등장했던 형사 고다이 쓰토무(五代努)가 다시 사건을 맡은 추리소설이다. 히가시노 게이고 《가공범》은 보통의 범인을 찾는 소설에서 오히려 범인을 만들어내는 소설로 알려져 있다. 이 작품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제목 《架空犯》, 즉 '가공범이라는 허구의 범인'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낸 점이다.

스토리 속으로
《가공범》은 처음에는 아주 전형적인 경찰 수사소설처럼 시작한다. 도쿄의 고급 주택가에서 화재가 발생하고, 불에 탄 집에서 도쿄도의회 의원인 후지도 야스유키와 그의 아내이자 전직 배우인 에리코의 시신이 발견된다. 처음에는 부부 사이의 동반자살 또는 아내가 남편을 살해한 뒤 자살한 사건으로 보였다. 하지만 부검과 현장 감식을 통해 두 사람 모두 타인에 의해 살해되었을 가능성이 드러난다. 즉, 범인이 살인을 저지른 뒤 자살이나 동반자살처럼 위장하고 집에 불을 지른 사건인 것이다. 사건을 맡은 인물이 형사 고다이인데 그는 관할서 형사 야마오와 함께 피해자들의 인간관계와 과거를 하나씩 조사한다. 현재의 살인사건을 조사할수록 사건은 현재에서 멀어진다. 오히려 4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게 된 것이다. 후지도 부부의 과거를 조사하면서 고다는 두 사람이 젊은 시절 도립 아키시마 고등학교에서 만났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당시 후지도 야스유키는 교사였고 에리코는 학생이었다. 수사의 초점은 누가 이 부부를 죽였는가?에서 40년 전에 무슨 일이 있었으며, 그 사건이 왜 지금 두 사람의 죽음으로 몰았는가? 로 바뀌게 된다. 그리고 사건 현장에서 후지도 야스유키의 태블릿이 사라진다. 그리고 피해자의 딸 에나미 가오리에게 범인으로부터 메시지가 온다. 범인은 자신이 후지도의 태블릿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며 3천만 엔을 요구한 것이다. 그러나 고다는 의심을 한다. 왜 하필 태블릿인가? 그리고 범인은 왜 돈을 요구하는가? 그 결과 범인은 경찰에게 단서를 던져주면 경찰은 스스로 그 단서를 확대하고 연결하고 그러면 범인은 직접 거짓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된다. 경찰이 하나의 가설을 완성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고다와 야마오의 수사가 진행될수록 후지도 부부의 과거가 하나씩 드러난다. 특히 에리코가 젊었을 때의 인간관계와 그녀가 이후 배우가 되고, 다시 사회적으로 성공한 인물이 되어가는 과정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 과정에는 사랑, 질투, 선택, 죄책감, 그리고 버려진 사람들의 기억이 존재한다. 에리코는 고등학생 시절 여러 남성과 관계를 맺었고, 결국 아이를 낳았다. 그 아이가 바로 현재의 이마니시 미사키이다. 그런데 이 아이의 친부가 누구인지가 작품의 마지막까지 중요한 미스터리로 남는다. 한때 에리코와 관계를 맺었던 야마오는 자신이 미사키의 친아버지라고 생각한다. 반면 후지도 역시 미사키를 자신의 딸이라고 믿고 있었다. 즉 두 남자가 모두 미사키에게 부성애를 품고 있었다. 미사키는 백화점 외상부 직원으로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었고 그녀에게는 딸 마나미가 있다. 마나미는 점점 비행에 빠지고 있었고, 미사키는 딸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는 상황에 극심한 고통을 받고 있었다. 그런데 에리코가 미사키의 딸 문제에 관여한다. 오히려 자신이 가장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부분을 찌르는 잔인한 비난으로 받아들이고 결국 감정이 폭발한 미사키는 에리코를 살해하고 만다. 그것은 처음부터 치밀하게 계획된 살인이 아니라 감정이 폭발하여 발생한 우발적 살인이었다. 에리코를 죽인 뒤 미사키는 자신도 자살하려 한다. 후지도는 집에 돌아와 에리코의 시신을 발견한다. 그리고 집에 설치된 방범 카메라 등을 통해 사건의 정황을 파악한다. 그는 미사키가 범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지만 경찰에 신고하지 않는다. 왜먀하면 미사키가 자신의 딸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후지도는 엄청난 결정을 한다. 자신이 죽어서 미사키를 보호하기로한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죽음을 살인처럼 보이게 만들 계획을 세운다. 미사키가 에리코를 죽였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미사키가 체포될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미사키의 살인은 후지도 살인사건과 별개의 사건처럼 보이게 되는 이것이 바로 '가공범' 계획인 것이다.
가공범의 등장
후지도의 부탁을 받은 야마오는 경찰 수사의 허점을 이용한다. 자신이 실제 범인인 것처럼 보이는 행동을 일부러 하면서 수사 방향을 흔든다. 그리고 미사키에게는 평소처럼 생활하라는 메시지를 보낸다. 경찰이 미사키를 의심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여기서 야마오의 놀라운 역할이 드러난다. 그는 형사 고다이 쓰토무(五代努)를 도와 함께 수사하는 관할경찰이면서 동시에 경찰을 속이는 사람인 것이다. 그는 수사팀 안에 있으면서 수사팀을 조작한다. 그래서 이 작품의 제목인 가공범은 사건의 핵심 구조가 되는 것이다. 실제 범죄자는 미사키인데, 경찰이 추적하게 되는 '범인'은 야마오가 만들어낸 허구의 존재 바로 가공범인 것이다.
그런데 사소한 단서가 야마오의 계획을 무너뜨린다. 미사키의 딸 마나미와 관련된 사진과 사소한 생활의 흔적, 예를 들면 미사키가 사용한 물건에 관한 아주 작은 단서가 오랫동안 쌓아온 경찰의 가설과 맞지 않는다는 점을 고다가 발견한다. 고다 형사는 자신들이 쫓고 있는 범인이 실제 범인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판단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결국 미사키가 에리코를 살해했다는 사실에 밝혀내고 체포한다. 미사키는 자신이 에리코를 죽였다는 사실을 인정했고 경찰은 야마오의 역할까지 파악하게 된다.
미사키의 진짜 아버지는 누구인가?
야마오는 미사키가 자신의 딸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야마오에게 모든 일을 시키고 자살한 후지도 역시 자신이 미사키의 아버지라고 믿었다. 이 문제는 DNA 검사를 하면 간단히 해결된다. 그래서 경찰은 미사키에게 DNA 검사를 받을 것인지 묻는다. 그런데 미사키는 검사를 원하지 않았다. 결국 미사키의 친부가 야마오인지 후지도인지는 끝내 소설에서 밝혀지지 않는다. 이렇게 소설은 열린 결말로 끝이 난다. 그런데 《가공범》의 엔딩에서 미사키가 DNA 검사를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야마오는 안도한다. 그리고 그가 계속 미사키를 짝사랑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라는 말을 한다. 야마오는 미사키를 자신의 딸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실제로는 그것을 확신할 수 없었을 것이다. DNA 검사를 한 결과, 자신이 친부라면 미사키에 대한 부성애가 현실이 되지만 자신이 아버지가 아니라면 지금까지의 부성애라는 감정은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래서 오히려 진실을 모르는 상태에서 미사키를 사랑할 수 있는 것이 야마오에게는 역설적으로 더 좋은 상황일 것이다.
나의 생각
이 소설을 읽고 내가 가장 놀라운 게이고의 상상력은 누가 아버지인가 하는 문제가 아니라 둘다 아버지이고 싶은 마음을 소설의 핵심으로 만들었다는 점이다. 이 작품의 엔딩에서 그래서 미사키의 진짜 아버지는 누구인가?라는 점이 궁금할 것이다. 그런데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는 그 답을 주지 않는다. 이 소설에서 게이고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친자관계를 밝히는 것보다 미사키를 자신의 딸이라고 믿고 그녀를 보호하려는 아버지들의 부성애를 보여주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부성애 때문에 후지도는 미사키를 자신의 딸이라고 믿고 죽었고 야마오는 미사키가 자신의 딸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범죄를 저지른 것이다. 부성애가 정말 크다면 딸을 보호하기 위해 기꺼이 죽음을 맞이하고, 딸의 죄를 감추기위해 가짜 범인을 만들고 살인사건을 조작하기도 하는 이 소설일 읽고 인간은 과연 어떤 존재인가에 대해서 다시 한번 더 생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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