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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뮈의 『전락』의 추리소설적 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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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스톰 2026. 9. 20. 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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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뮈의 『전락』의 추리소설적 독서

 

클라망스가 깨달은 부조리를 추적하는 미스터리

소설의 주인공인 클라망스가 깨달은 부조리를 추적하는 자기 심문의 미스터리로서 알베르 카뮈의 『전락』(La Chute, 1956)은 꽤 적당한 소설이다. 주인공 장바티스트 클라망스는 암스테르담의 술집 멕시코 시티에서 만난 타인들에게 자신의 과거를 일방적으로 이야기한다. 그는 파리에서 명성을 얻었던 변호사였고, 가난한 사람과 억울한 사람을 변호하는 정의로운 인간이라고 자부했다. 그러나 어느 날 밤 파리의 센강을 건너던 다리 위에서 한 여자가 강물에 뛰어드는 장면을 목격한다. 그는 여자의 비명과 물에 빠지는 소리를 들었지만 아무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사건을 계기로 자신이 믿고 있던 선량한 인간이라는 자기 이미지가 무너진다. 이 단순한 사건을 중심으로 보면 『전락』은 오히려 하나의 추리소설처럼 읽힌다. 이 장면에서 중요한 것은 누가 여자를 죽였는가 아니라 왜 클라망스는 그 순간 그 여자를 왜 구하지 않았는가 그리고 나아가 왜 클라망스는 자신을 정의로운 인간이라고 믿어왔는가 라는 질문이다. 카뮈는 추리소설의 살인사건 대신 양심의 사건을 만들고, 범죄 현장 대신 인간의 내면을 수사하게 만든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작품이 심리추리소설로서의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클라망스의 몰락

추리소설에는 대개 살인이나 그에 준하는 비밀스러운 사건이 있다. 카뮈의 『전락』에서의 중요 사건은 클라망스 자신의 몰락이다. 소설의 제목인 전락은 사회적 지위가 추락했다는 뜻이 아니다. 클라망스는 과거의 자신과 현재의 자신 사이에서 거대한 간극을 발견한다. 과거의 그는 자신을 타인을 위해 희생하는 인간으로 생각했다. 가난한 사람을 변호했고, 약자를 도왔으며, 자신을 늘 정의로운 사람으로 평가해 왔다. 그런데 다리 위에서 한 여자가 물에 빠졌을 때 그는 행동하지 않았다. 바로 여기에서 자신의 믿음과 평가에 대한 균열이 발생한다. 과거의 클라망스와 현재의 클라망스 중 어느 쪽이 진짜인가? 이 질문은 사건의 범인을 찾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 왜냐하면 범인은 외부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탐정으로서 클라망스가 수사해야 할 대상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그는 자신의 과거 행동들을 하나씩 꺼내 놓는다. 독자는 그의 진술을 그대로 믿어도 되는지 의심하면서 그의 말 속에서 숨겨진 동기를 찾아야 한다. 클라망스는 증인이면서 피고이고, 검사이면서 변호사이며, 동시에 탐정이다. 이러한 다중적 위치가 자신의 믿음을 전락시킨 주인공으로 말미암아 소설, 『전락』을 독특한 심리추리소설로 만든다.

 

 

 

클라망스의 증언은 트릭이다

전통적인 추리소설에서 탐정은 사건 현장을 조사하고 증거를 수집한다. 『전락』에서는 그 사건 현장이 클라망스의 기억이다. 그런데 클라망스가 하는 말에는 이상한 특징이 있다. 그는 자신의 과거를 고백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자신을 끊임없이 변호한다. 그런데 동시에 자신을 가혹하게 비난하기도 한다. 이것은 추리소설적 측면에서 보았을 때 매우 교묘한 서술 트릭이다. 클라망스는 독자에게 설명해주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끊임없이 질문을 한다. 내가 정말 선량한 인간이었을까? 그리고 곧바로 다른 질문이 따라온다. 그렇다면 나는 왜 그렇게 오랫동안 내가 선량하다고 믿었을까? 이것은 추리의 초점이 행위에서 자기기만으로 이동하는 순간이다. 따라서 『전락』에서 가장 중요한 단서는 클라망스의 말과 말 사이의 모순이다. 그는 자기 자신에 대한 완벽한 증언자가 아니다. 오히려 가장 의심스러운 증인이다.

 

 

 

자살한 센강의 여자

『전락』의 가장 강력한 추리적 대상은 센강 다리 위에서 벌어진 사건이다. 클라망스는 어느 밤 센강을 건너던 중 한 여자가 비명과 함께 물속으로 떨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그는 그 여자를 구조하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후 뒤에서 웃음소리를 듣는다. 이 장면은 소설 전체의 핵심 단서다. 독자는 처음에는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그 여자를 죽인 사람은 누구인가? 그러나 곧 질문이 달라진다. 왜 클라망스는 여자를 구조하지 않았는가? 그리고 다시 질문이 깊어진다. 그가 여자를 구하지 않은 것은 자신이 믿어왔던 도덕적 인간상 자체가 거짓이었기 때문인가? 이렇게 사건은 외부 범죄에서 클라망스의 내부 범죄로 이동한다. 센강의 여자는 실제로 클라망스가 살해한 사람이 아니다. 그러나 그녀의 죽음은 클라망스에게 도덕적 범죄의 현장이 된다. 그는 직접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죽어가는 것을 보고도 행동하지 않았다. 이때 카뮈는 추리소설의 아주 무서운 질문, 즉 클라망스는 타인의 죽음 앞에서 어떤 인간이었는가 하는 문제를 독자에게 던진다. 그렇기 때문에 센강에서 죽은 여자는 클라망스의 심리를 추리하는 전부가 된다.

 

 

 

정의로운 변호사? 혹은 비겁한 변호사?

클라망스의 변호사라는 직업은 중요한 추리적 단서다. 변호사는 다른 사람을 변호하는 직업이다. 그런데 클라망스의 인생을 추적해보면 그는 결국 평생 동안 자기 자신을 변호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가난한 사람을 변호하고 약자를 돕는 행동은 분명 외형적으로 선행이다. 그러나 클라망스는 그러한 선행을 통해 자신의 도덕적 우월감을 즐기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여기에서 카뮈는 아주 미묘한 심리적 트릭을 사용한다. 선행 자체가 거짓이 아니라, 선행을 하는 인간의 동기가 의심스러워진다. 클라망스는 자신이 타인을 위해 살았다고 생각했지만, 점차 자신의 행동 안에 숨어 있던 자기애를 발견한다. 그는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어 했다. 칭찬받고 싶어 했다. 도덕적으로 우월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 했다. 즉 그의 선행에는 타인을 향한 사랑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을 사랑하기 위한 장치가 들어 있었다. 이것이 『전락』의 깊은 의미의 심리추리라 할 것이다. 범죄의 동기를 찾는 추리소설에서 범죄자의 동기가 탐욕과 복수 그리고 질투라면, 『전락』에서 인간의 도덕적 행위 뒤에 숨어 있는 동기는 허영과 자기애다.

 

 

 

『전락』의 부조리

『전락』에서 정작 클라망스가 발견한 부조리란 무엇일까. 클라망스의 깨달음은 단순히 그는 위선자였다는 정도가 아니다. 그가 발견한 더욱 깊은 부조리는 인간이 스스로를 도덕적인 존재라고 믿으면서도 실제로는 자기 자신에게조차 완전히 투명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인간은 자신을 선량하다고 믿고 싶어 한다. 그러나 실제 행동에는 욕망과 허영과 자기보존 본능이 섞여 있다. 더 나아가 인간은 자신이 타인을 판단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자신 역시 끊임없이 타인의 인정과 시선을 필요로 한다. 클라망스는 결국 인간에게 절대적인 순수성을 요구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그런데 그가 발견한 것은 자기 안에 있는 허영, 자기기만, 비겁함, 도덕적 우월감이다. 그리고 더 무서운 것은 그 발견이 클라망스에게만 해당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는 대화 상대를 향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결국 상대방도 자기 자신을 심문하도록 만든다. 이 때문에 『전락』의 마지막은 추리소설의 해결과 정반대에 있다. 사건이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사건의 용의자가 모든 사람으로 늘어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클라망스가 용의자였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독자 역시 자신이 그 상황에서 무엇을 했을지 생각하게 된다. 이것이 카뮈가 만든 가장 뛰어난 추리적 장치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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