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스 르블랑의 아르센 뤼팽

모리스 르블랑과 아르센 뤼팽
작가 모리스 르블랑이 창작한 변신하는 탐정 아르센 뤼팽을 한 작가의 장수 캐릭터 시리즈라는 관점에서 보면 중요한 변화가 보인다. 르블랑은 뤼팽을 계속 같은 모습으로 반복한 것이 아니라, 괴도소설에서 탐정소설로 그리고 모험소설에서 범죄소설로 작품의 성격을 계속 변화시켰다. 특히 후기로 갈수록 뤼팽뿐 아니라 짐 바르네트(Jim Barnett) 같은 탐정적 인물을 활용하면서 르블랑 특유의 범죄자와 탐정의 경계 허물기가 더욱 뚜렷해진다. 뤼팽의 첫 등장은 1905년이지만, 르블랑의 뤼팽 작품군은 통상 1939년 연재작까지 이어지며, 사후 출간까지 포함하면 1941년의 『Les Milliards d'Arsène Lupin』도 있다. 이 작품은 1939년 『L'Auto』에 연재되었으나 르블랑이 완성하지 못한 채 남은 미완의 작품이다.

모리스 르블랑은 뤼팽의 창조자
모리스 르블랑(Maurice Leblanc)은 1864년 프랑스 노르망디의 루앙에서 태어나 1941년 사망한 프랑스 작가다. 그는 처음부터 추리소설가를 꿈꾼 사람이 아니었다. 르블랑은 초기에는 일반 소설과 문학작품을 발표했다. 『Une femme』(1893), 『Voici des ailes』(1898), 『L'Enthousiasme』(1901) 등은 뤼팽이 등장하기 전 르블랑의 문학적 관심을 보여준다. 그런데 1905년 잡지 『Je sais tout』의 요청으로 「아르센 뤼팽의 체포(L'Arrestation d'Arsène Lupin)」가 연재되면서 그의 운명이 바뀐다. 첫 이야기는 1905년 7월 15일자에 등장했고, 예상 밖의 성공을 거두면서 1907년에는 『괴도 신사 아르센 뤼팽』이라는 단행본으로 묶인다. 여기서 르블랑에게 하나의 역설이 발생한다. 문학가로서의 르블랑보다 뤼팽의 작가 르블랑이 훨씬 유명해진 것이다. 이것은 아서 코난 도일과 셜록 홈스의 관계와도 비슷하다. 르블랑 역시 뤼팽 이외의 작품을 시도했지만 결국 뤼팽이 그의 문학적 생애를 압도했다.

1905년, 괴도 뤼팽의 탄생.
초기의 뤼팽은 경찰을 피해 다니는 단순한 도둑이 아니고 신사(gentleman)이고 동시에 괴도(cambrioleur)다. 즉, 그는 범죄자, 신사, 배우, 마술사 그리고 탐정이라는 여러 역할이 한 인물 안에 결합되어 있다. 뤼팽의 가장 중요한 무기는 총이나 폭력이 아니다. 바로 변장이다. 그는 끊임없이 다른 사람이 된다. 가명을 사용하여 하나의 이름에 자신을 고정시키지 않는다. 베우로서의 연기를 동원하여 상대가 자신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계산한다. 그리고 관찰을 통하여 상대의 약점과 욕망을 찾아내며 뛰어난 추리력으로 상대방이 무엇을 알고 있는지 역으로 추론한다. 그래서 뤼팽은 단순한 절도범이 아니라 변신하는 탐정이라고 볼 수 있다.

『괴도 신사 아르센 뤼팽』은 범죄소설인가, 추리소설인가
1907년의 첫 단행본은 아홉 편의 이야기를 묶은 단편집이다. 여기에는 「아르센 뤼팽의 체포」, 「감옥에 갇힌 뤼팽」, 「뤼팽의 탈출」, 「신비한 여행자」, 「왕비의 목걸이」, 「검은 진주」 등이 포함된다. 이 초기 작품의 특징은 독자가 뤼팽과 함께 범죄를 계획하고 그 과정을 지켜본다는 것이다. 아르센 뤼팽은 어떻게 경찰과 피해자 모두를 속일 것인가?하는 문제를 두고 모두를 속이고 사건을 해결하는 범죄자다. 따라서 독자는 범죄를 막아야 할 탐정의 시점이 아니라 범죄자의 두뇌를 따라가는 쾌감을 경험한다. 그런데 모리스 르블랑은 콘도일의 셜록 홈즈와 자신의 아르센 루팡을 대결시키기도 한다. 1908년 『Arsène Lupin contre Herlock Sholmès』에서는 르블랑이 코난 도일의 셜록 홈스를 변형한 헐록 숌즈(Herlock Sholmès)를 등장시킨다. 이 작품은 뤼팽의 성격을 결정적으로 보여준다. 뤼팽에게 진정한 적은 경찰이 아니다. 그의 진정한 적은 자신만큼 영리한 인간이다. 따라서 홈스형 탐정과 뤼팽의 대결은 단순한 선악 대결이 아니다. 추리의 천재와 범죄의 천재가 벌이는 지적 게임이다. 이때 르블랑은 독자를 양쪽에 동시에 서게 한다. 숌즈가 단서를 찾거나 뤼팽이 숌즈를 속이면, 독자는 탐정의 승리와 범인의 승리를 동시에 즐기는 모순적인 독서를 하게 된다. 이것이 뤼팽 시리즈의 독특한 매력이다.
『기암성』과 『813』
1909년의 『기암성(L'Aiguille creuse)』은 뤼팽 문학에서 특히 중요한 작품이다. 작품에는 에트르타의 기암성과 프랑스 왕실의 보물이라는 역사적 비밀이 연결된다. 르블랑은 여기서 범죄 퍼즐을 프랑스의 역사와 보물전설 속으로 확장한다. 이 작품부터 뤼팽은 단순한 괴도가 아니라 역사적 비밀을 알고 있는 모험가의 성격을 강하게 갖는다. 한편 1910년의 『813』은 뤼팽 시리즈에서 분위기가 크게 달라지는 작품이다. 초기 뤼팽에게는 유머러스하고 장난기가 강했다. 그러나 『813』으로 오면서 살인, 국제정치, 음모, 국가적 이해관계가 결합된다. 따라서 뤼팽은 단순한 유쾌한 괴도에서 국제적 음모에 휘말리는 거대한 범죄 서사의 중심인물로 변화한다. 이것은 르블랑의 작품세계가 시대와 함께 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7. 제1차 세계대전의 영향
제1차 세계대전 전후의 르블랑은 작품의 분위기를 크게 바꾼다. 대표적인 작품이 『포탄의 파편』(L'Éclat d'obus), 『황금 삼각형』(Le Triangle d'or), 『서른 개의 관의 섬』(L'Île aux trente cercueils), 『호랑이의 이빨』(Les Dents du tigre),등이다. 이 작품들의 발표 시기는 1910년대 후반부터 1920년대 초반에 걸쳐 있다. 여기서 뤼팽 문학은 모험소설과 전쟁소설의 경계로 이동한다. 그래서 후기 뤼팽의 모험은 초기의 신사 도둑이 부자를 골탕 먹이는 이야기보다 훨씬 무겁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전쟁이 뤼팽의 영웅적 성격을 강화했다는 점이다. 뤼팽은 원래 법의 편에 서 있는 인물이 아니다. 그런데 국가적 위기가 등장하면 그는 때때로 범죄자이면서 동시에 프랑스의 이익을 지키는 인물처럼 행동한다. 이것은 뤼팽이라는 캐릭터의 가장 중요한 모순이다. 그러나 이러한 특징이 뤼팽을 단순한 범죄자보다 훨씬 매력적인 주인공으로 만든다.
짐 바르네트
르블랑의 후기 작품에서 특히 재미있는 인물이 짐 바르네트다. 『L'Agence Barnett et Cie』는 1928년에 출간된 이야기집으로, 여덟 편의 사건을 묶었다. 작품 속 짐 바르네트는 사설 탐정처럼 사건에 개입한다. 그런데 마지막에 밝혀지는 정체가 놀랍다. 짐 바르네트는 사실 아르센 뤼팽이다. 작품 자체도 이 정체를 폭로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Wikisource에 공개된 원문은 바르네트의 범죄를 궁극적으로 “그 일을 저지른 사람”, 즉 아르센 뤼팽에게 돌린다는 구조를 명시한다. 이것은 르블랑의 창작세계에서 굉장히 중요한 발상이다. 뤼팽
뤼팽 시리즈의 변화
뤼팽 시리즈 전체를 읽으면 상당히 재미있는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1905~1909-괴도의 유쾌한 범죄·변장·퍼즐 스토리
1910~1913-국제적 범죄자의 음모·살인·추리
1914~1921-모험가·애국적 영웅의 전쟁·첩보·국가적 위기 이야기
1922~1929-탐정·모험가의 흥미로운퍼즐·미스터리·보물 스토리
1930년대-다면적 범죄 해결자, 경찰수사·사회적 사건·시대적 불안을 다룬 이야기.
위에서 보듯 뤼팽은 한 캐릭터이면서 동시에 여러 장르를 연결하는 장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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