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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대사와 요석공주의 로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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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스톰 2024. 3. 29. 0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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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대사와 요석공주의 로맨스

 

동화책에 실린 원효와 요석

     당나라로 불교를 수학하려 가다가 대당 유학을 포기한 원효는 뜻한 바 있어서 거리에서 노래를 부르고 다니다가 요석공주를 아내로 맞이했다는 어린이 그림책을 보았다. 실제로 원효는 설총의 아버지이고 당대 요석공주의 남편이었다. 그런데 그가 장가를 가게된 연유 중에서 이상한 노래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어느 날부터 원효대사가 이상한 도끼에 대한 노래를 부르고 다니는 것이었다. 원효 대사와 요석 공주의 사랑 이야기라고는 하는데 승려가 공주와의 사랑 이야기를 노래로 부르고 다니는 것이 수상했던 태종무열왕은 원효를 궁으로 불러들였다. 아무도 원효의 노래 말을 알아듣지 못했지만 무열왕은 무언가 짚히는 것이 있었다. 그리고 마침 당시 남편을 잃고 혼자 살고있는 자신의 딸인 요석 공주를 떠올렸다. 무열왕은 자신의 딸인 요석 공주와 원효를 결혼시키기로 마음을 먹고 원효대사를 왕궁으로 부른 것이었다. 궁에서 원효대사는 젖은 옷을 말린다는 핑계로 궁에 며칠이나 머물렀고 왕이 짐짓 자리를 마련해주어 원효와 요석 공주는 사랑에 빠졌다는 이야기이다. 그 후 요석공주에게 아기가 생겼고 그렇게 태어난 아이가 바로 설총이다 그러니까 원효의 성은 설씨가 되겠다.

 

원효는 무슨 노래를 불렀나?

    원효대사가 경주 길거리에서 큰 소리로 누가 자루 없는 도끼를 빌려주겠는가? 내가 하늘을 떠받칠 기둥을 깎으리.”라는 노래를 부르며 다녔다. 많은 사람이 그 노래를 들었지만, 누구도 그 노래가 무슨 의미인지는 알지 못했다. 그때 노래를 들은 태종무열왕은 여자를 원효대사와 맺어주면 신라의 큰 보탬이 되는 인물이 태어날 것을 예감했다. 마침 무열왕의 딸 가운데 요석공주가 남편을 잃고 혼자가 되었기에 원효대사와 맺어줄 결심을 하고 그 방법을 찾았다. 이 사실을 들은 요석공주도 평소 원효대사의 명성을 잘 알고 있던지라 매우 기뻐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궁궐 사람들은 원효대사가 문천교를 지난다는 사실을 알고 요석공주에게 귀띔을 해주었다. 요석공주는 반드시 원효대사를 궁으로 데려오라는 명령을 하였고, 나졸들은 문천교 밑에서 원효대사 오기를 기다렸다. 그때 원효대사가 문천교 들어서자 나졸 대장이 정중하게 원효대사님께 청이 하나 있습니다. 저희와 함께 요석궁으로 가주십시오.”라고 하였다. 그런데 원효대사는 들은 채도 하지 않고 가던 길로 발걸음을 옮겼다. 다급해진 대장은 원효대사의 앞을 막고, “대사님 저와 무예를 겨루어 이기시면 가던 길을 가시고, 지면 저희와 함께 가주십시오.”라고 하였다.

     그러자 원효대사는 이를 승낙하고 무술을 겨루었다. 허나 무술이 뛰어났던 대장도 출가 전 낭도로서 무예가 깊었던 원효대사에게는 상대가 될 수가 없었다. 기대와 달리 대장이 패하자, 이번에는 모든 나졸이 한꺼번에 덤볐으나 이길 수 없었다. 마지막 나졸 하나가 원효대사를 잡으려 하자 일부러 발을 헛디딘 척하며 문천교 밑으로 빠졌다. 결국, 옷이 젖은 원효대사는 나졸들과 함께 요석궁으로 갔고, 요석공주는 젖은 옷을 말려야 한다며 며칠 동안 궁에 머물게 하였다. 원효대사가 요석궁에 머물렀던 것은 단 사흘뿐이었지만, 요석공주와 인연이 되어 부부의 연을 맺고, 훗날 설총을 낳게 되었다고 한다.

 

자재암에 있었다고 전하는 요석궁지

    경기도 동두천시 상봉암동 소요산에는 원효대사가 창건했다는 자재암이 있다. 조선지지(朝鮮地誌)에는 이 자재암에 요석공주가 아들 설총과 함께 머물렀던 요석궁의 옛터가 있었다고 전한다. 현재 요석궁의 옛터는 찾을 길이 없으나, 지금도 그 일대에 요석공주와 원효대사의 애달픈 사랑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요석공주와 인연을 맺은 원효대사는 스스로 승복을 벗고 파계승이 되었고, 자신을 소성거사라 하였다. 그리고 광대들이 사용하는 큰 박을 본 따 무애라는 도구를 만들어 북처럼 치고 다녔는데, 이렇게 신라 전역을 다니며 사람들을 교화하여 삼국통일의 원천이 되도록 하였다. 이후 원효대사는 40세가 되었을 때 소요산의 원효대에서 수행에 전념하였고, 요석공주도 설총을 데리고 원효대 인근에 작은 별궁을 짓고, 아침마다 원효대를 향해 삼배를 드렸다고 한다. 그때의 별궁터가 지금의 요석궁지이다요석공주는 원효대사를 파계시킨 욕망의 여인으로 오해를 받기도 한다. 그러나 요석공주는 당대 최고의 승려인 원효대사가 민중 속으로 들어가 최고의 경지에 오르도록 도와준 인물이기도 하다. 그녀는 설총을 훌륭하게 키우면서 먼발치에서 원효대사를 응원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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