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핀 테이 『시간의 딸』의 독특함

살인사건 없는 추리소설
조세핀 테이(Josephine Tey)의 『시간의 딸(The Daughter of Time)』은 1951년에 발표된 작품이다. 그녀의 본명은 엘리자베스 매킨토시(Elizabeth Mackintosh)이며, 이 작품은 그녀가 생전에 발표한 마지막 소설이다. 그런데 1990년 영국범죄작가협회(CWA)가 선정한 역대 100대 범죄소설에서 1위를 차지했고, 1995년 미국추리작가협회(MWA)의 역대 100대 미스터리에서도 4위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2023년 TIME이 선정한 『The 100 Best Mystery and Thriller Books of All Time』에도 포함되었다. TIME은 이 작품을 ‘수백 년 전의 사건을 현재의 탐정이 조사하는 독특한 역사 미스터리’로 평가하면서, 특히 리처드 3세와 런던탑의 왕자들(Princes in the Tower)의 실종을 둘러싼 역사적 통념에 의문을 제기한 작품이라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이 작품의 가장 놀라운 점은 살인 현장도, 시체도, 범행 도구도, 현재의 범인도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훌륭한 추리소설로 평가 받는다. 왜냐하면 테이는 역사 자체를 하나의 미제사건(cold case)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시간의 딸』의 구성
일반적인 추리소설은 통상 범죄가 발생하고 탐정이 수사하면서 단서를 발견하고 용의자 추적하여 진범 확인하고 사건을 종결하는 형식이다. 그런데 『시간의 딸』은 전혀 다르다. 과거의 역사적 사실에 대해 의심하고 자료 조사를 통해 실제 증언과 기록을 비교한다. 그리고 기존 통설의 모순을 발견하고 새로운 가설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즉 ‘과거에 이미 일어난 사건을 현재의 탐정이 재수사하는 추리소설’인 것이다.

스토리 속으로
주인공은 스코틀랜드 야드의 형사 앨런 그랜트(Alan Grant)이다. 그는 범죄자를 쫓다가 다리를 다쳐 병원에 입원한다.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된 그랜트는 병원생활이 너무 심심하던 차에 친구 마르타 홀러드(Marta Hallard)가 역사적 인물들의 초상화를 가져다준다. 그중 그랜트의 눈을 사로잡은 사람이 있었다. 바로 리처드 3세(Richard III)이다. 그랜트는 사람의 얼굴을 관찰하는 데 상당한 능력이 있는 형사인데 그는 리처드 3세의 초상화를 보면서 이상한 생각을 하게 된다. 역사책 속 리처드 3세는 잔인하고 음모를 꾸미며 조카들을 살해하고 왕위를 빼앗은 악당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랜트가 바라본 초상화 속 리처드 3세는 자신이 알고 있던 악인의 이미지가 아니고 지성미, 섬세함 같은 인상이 보였다. 그랜트는 “정말 리처드 3세가 조카들을 죽였을까?”하고 생각한다. 바로 이 질문이 500년 전의 사건을 현대의 수사사건으로 바꾸어버린다. 그랜트가 조사하기 시작한 사건은 흔히 ‘Princes in the Tower’, 즉 ‘런던탑의 왕자들’ 사건으로 알려져 있었다. 1483년 에드워드 4세가 사망하고 그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다. 에드워드 왕자와 리처드 왕자, 그 둘이 왕위 계승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아버지가 죽은 뒤 두 왕자는 런던탑에 들어간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 후 그들의 숙부인 리처드 3세가 왕위에 오른다. 그런데 소문으로는 리처드 3세가 왕위를 차지하기 위해 두 조카를 죽인 것이 아닐까? 하는 이야기는 오랫동안 영국 역사에서 거의 사실처럼 받아들여졌다. 그런데 그랜트 형사는 리처드에게 왕자를 죽일 이유가 있었는가? 하는 문제에 골몰한다. 그랜트는 병원 침대에서 직접 움직일 수 없었기에 젊은 미국인 연구자 브렌트 캐러딘(Brent Carradine)의 도움을 받는다. 캐러딘은 도서관과 박물관 등에서 역사자료를 조사한다. 그 과정에서 중요한 문제가 드러난다. 왕자들이 사라졌다는 사실과 그들을 리처드가 죽였다는 이야기가 동일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왕자들이 사라진 것은 사실에 가깝지만, “리처드가 그들을 죽였다” 는 것은 별도의 일 이라는 것이다. 그랜트는 이 둘을 분리한다. 그런데 셰익스피어의 『리처드 3세』는 리처드를 역사상 가장 유명한 악인 중 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랜트는 리처드 3세가 왕자들을 살해했다는 주장을 뒷받침할 직접적인 법적 증거가 부족하다는 점에 주목한다. 그랜트의 추리가 진행될수록 리처드 3세 이외의 인물이 부각된다. 바로 훗날 헨리 7세가 되는 헨리 튜더이다. 리처드 3세가 살아 있는 한 헨리에게는 왕위를 얻을 기회가 제한적이었다. 하지만 왕자들이 사라지고 리처드가 몰락하면 상황은 달라지고 헨리튜도는 왕위계승의 가능성이 높아지게 된다. 오랜 역사 속에서 왜곡된 리처드 3세의 제조명과 가다른 범인의 가능성으로 소설이 미해결로 끝이 나지만 추리라는 개념이 역사의 진실을 밝혀낼 수 있다는 독특한 테이의 소설은 한마디로 쇼킹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제목 『시간의 딸』의 의미
이 소설의 제목은 영어 속담에서 비롯된 표현이다. “Truth is the daughter of time.” 즉, 진실은 시간의 딸이라는 뜻이다. 시간이 흐르면 거짓말과 선전은 사라지고 결국 진실이 드러난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테이의 소설에서는 이 속담이 단순히 낙관적인 의미만 갖지는 않는다. 시간은 진실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거짓 이야기를 굳혀버리기도 하는 것이다. 500년 동안 반복해서 기록된 이야기는 어느 순간 사람들에게 ‘사실’처럼 받아들여진다. 그래서 진실을 찾으려면 오히려 시간이 만들어놓은 통념을 다시 의심해야 한다. 이것이 제목의 진정한 역설이다. 말하자면 시간의 딸을 믿지 말라고 하는 것이 이 소설에게 어울리는 제목이 될 것이다.
시간이 추리의 트릭이다
일반적인 추리소설의 트릭은 시간을 속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알리바이를 조작하여 범죄시간에 범인이 다른 곳에 있었다는 식으로 시간을 조작할 수 있다. 하지만 테이는 더 과감하게 시간을 조작한다. 말하자면 오백 년의 시간이 하나의 거대한 알리바이가 되도록 만든다. 너무 오래된 이야기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의심하지 않는다. 그랜트는 그 거대한 시간의 벽을 허물고 사건을 다시 조사한다. 따라서 『시간의 딸』의 진짜 추리 트릭은 오래되었고 모두가 그렇게 믿어버린다는 이유만으로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대중적인 추리소설로서의 성공
『시간의 딸』은 무거운 역사소설 혹은 역사학에 가까운 내용인데도 대중적인 추리소설로 성공했다. 그 이유는 몇 가지 내용으로 요약된다. 첫째, ‘누가 왕자들을 죽였는가?’라는 질문이 아직도 살아 있다는 것이다. 비록 500년 전 사건이지만 독자는 계속 질문하게 된다. “정말 리처드3세가 자신의조카들을 죽였을까?” 이것만으로도 미스터리의 기본적인 흥미가 유지된다. 둘째로는 모든 것을 조사하고 추적해야 하는 그야말로 신출귀몰해야 하는 주인공인 탐정이 병원 침대에 누워 움직이지 못한다는 역설이 독자에게 쇼크가 아닐 수 없다. 형사인 그랜트는 다리를 다쳤고 병원 침대에 누워 현장에 갈 수 없다. 뛰어다닐 수도 없고 범인을 추적할 수도 없다. 그런데 오히려 이 제한적 상황이 작품의 독특한 재미를 만든다. 움직일 수 없는 형사가 500년이나 된 사건을 해결하는 것이다. 셋째, 공간적으로 보면 이 작품은 매우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대부분의 이야기가 병실에서 이루어진다. 하지만 독자의 상상 속에서는 공간이 무한히 확장된다. 병실에서 그랜트의 상상을 따라 무대를 과거의 런던탑, 15세기 영국의 왕조상황, 장미전쟁, 튜더 왕조, 리처드 3세의 영국 궁정으로 이동한다. 따라서 물리적 공간은 좁지만 역사적 공간은 무한히 넓어지게 된다. 이것이 테이의 뛰어난 서술 방식이라 할 수 있다.
나의 생각
『시간의 딸』은 역사소설이면서 추리소설이지만 일반적인 역사소설과는 다르고 통상적인 추리소설과도 다르다. 작가는 리처드 3세를 역사적 실제 인물이면서 동시에 용의자로 보았다가 그에게 상당히 우호적인 관점을 취한다. 어쩌면 작가, 조세핀 테이는 처음부터 리차드 3세가 조카들을 죽이고 왕위를 찬탈한 범인이 아니라는 심증을 굳힌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소설 결말에서 그랜트의 결론은 역사적 진실의 최종 판결이라기보다 하나의 강력한 재해석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영국 역사학계에서 리처드 3세를 둘러싼 역사적 논쟁은 지금도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니라고 한다. 『시간의 딸』이 현대적인 의미의 액션 스릴러도 아니고, 공포스러운 연쇄살인극도 아니며, 화려한 트릭를 동반한 아찔한 추리소설도 아니다. 그런데 이 소설에 엄청난 흥미성이 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는 게 하여간 묘한 매력이다. 그리고 그 점이 내가 어쩔 수 없이 조세핀 테이를 존경하게 만드는 것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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