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 앰블러의 『디미트리오스의 관』 : 스파이 미스터리물

서스펜스 넘치는 첩보소설
에릭 앰블러(Eric Ambler)의 『디미트리오스의 관(A Coffin for Dimitrios)』은 1939년에 발표된 추리소설이다. 미국에서는 『The Mask of Dimitrios』라는 제목으로도 출간되었다. TIME은 2023년 선정한 『The 100 Best Mystery and Thriller Books of All Time』에 이 작품을 포함시켰다. TIME은 특히 이 소설을 전쟁 중의 이스탄불과 발칸을 배경으로 평범한 작가가 한 범죄자의 과거를 추적하다 훨씬 거대한 범죄와 정치적 음모 속으로 빠져드는 우수한 작품으로 평가했다. 그런데 『디미트리오스의 관』의 진정한 가치는 탐정이 범인을 찾는 전통적인 추리소설과 첩보 소설로의 전환을 시도한 점에 있다고 할 것이다. 에릭 앰블러는 범인은 누구인가 보다는 그 범죄자는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그 범죄자를 필요로 했던 세계는 어떤 것인가?”로 질문을 확장한 것이다. 앰블러는 평범한 인물을 낯선 국제도시와 범죄 세계에 밀어 넣고, 그곳에서 서스펜스와 현실적인 첩보소설의 문법을 결합했다. 이 작품은 이후 앨프리드 히치콕, 존 르 카레, 앨런 퍼스트 같은 작가와 영화인들에게 이어지는 현대 첩보소설의 중요한 토대가 되었고 평가된다.

『디미트리오스의 관』라는 제목트릭이다
소설이 시작될 때 이미 디미트리오스는 죽은 사람이다. 이스탄불의 영안실에서 한 남자의 시체가 발견된다. 그의 이름은 디미트리오스 마크로풀로스(Dimitrios Makropoulos)이다. 그는 국제적인 범죄자였고, 암살, 마약밀매, 정치적 음모 등에 관여했던 인물이다. 따라서 일반적인 독자들이라면 디미트리오스를 죽인 사람은 누구인가?라는 데에 관심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앰블러는 이 질문 대신, 디미트리오스는 도대체 어떤 인간이었는가?에 초점을 둔다. 그리고 작중 주인공 찰스 라티머(Charles Latimer)는 전문 탐정이 아니고 추리소설을 쓰는 작가이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자신의 소설에서 범인을 만들어내던 사람이 실제 범죄자의 삶을 추적하게 된다. 라티머는 이스탄불에서 터키 경찰 관계자인 하키 대령(Colonel Haki)을 만난다. 하키 대령은 그에게 디미트리오스라는 악명 높은 범죄자에 대해 알려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라티머는 영안실에서 관에 누워있는 디미트리오스의 시체를 직접 보게 되면서 그 순간부터 그의 호기심이 시작된다.

스토리 속으로
탐정 역할을 하는 작가인 주인공 라티머는 디미트리오스의 죽음에 특별한 관심을 갖는다. 왜냐하면 디미트리오스는 단순한 범죄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는 발칸 지역의 정치적 격변과 국제범죄에 깊숙이 관여해온 인물이었다. 라티머는 작가적 호기심으로 그의 인생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그는 디미트리오스가 과거에 활동했던 여러 도시와 장소를 찾아간다. 이스탄불에서 시작된 추적은 점차 터키, 그리스, 발칸반도 그리고 프랑스 등 유럽 여러 지역으로 확대된다. 마치 제임스 본드가 여러나라를 찾아 범인의 궤적을 찾는 것과 유사하다. 그리고 그는 디미트리오스의 삶을 알고 있는 사람들을 찾아간다. 그러나 사람들의 증언을 하나씩 모으면서 그의 이미지가 달라진다. 어떤 사람에게 디미트리오스는 살인자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밀수업자이며, 또 다른 사람에게는 정치적 음모에 가담한 사람이었다. 즉 독자는 한 사람을 직접 만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기억하는 디미트리오스의 파편조각들을 통해 그를 재구성하게 된다. 여기에서 아주 독특한 추리기법이 발생한다. 라티머는 범인을 찾는 것이 아니라 마치 범인의 일대기를 쓴다. 말하자면 라티머의 수사는 사실상 범죄자의 전기 작성인 것이다. 처음의 디미트리오스는 전설적인 악당이었다. 그러나 그의 과거를 조사할수록 독자는 그가 혼자 움직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의 주변에는 정치인, 암살자, 밀수업자, 국제 범죄자 그리고 각국의 정치세력 등이 얽혀 있었다. 그런데 라티머의 조사 과정에서 중요한 인물이 등장한다. 바로 미스터 피터스(Mr. Peters)인데 그는 그는 디미트리오스와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그의 과거를 알고 있었다. 그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국제정치와 범죄 네트워크, 인간의 탐욕 등이 망라된다. 결국 독자는 디미트리오스를 알고 싶어했지만 소설의 후반에서 발견하는 것은 디미트리오스를 만들어낸 세계인 것이다.
탐정이 아닌 작가라는 평범한 주인공의 등장
라티머는 제임스 본드나 전문 첩보원도 아니고 그저 추리소설을 쓰는 작가이다. 그런 사람이 국제범죄의 세계에 들어가 전세계를 누비면서 비밀을 파헤친다. 이 설정은 독자에게 중요한 효과를 준다. 일반인인 독자가 마치 라티머가 된 것처럼 동일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독자도 라티머처럼 처음에는 아무것도 모르고 라티머가 알아가는 만큼 독자도 알게 된다. 이러한 소위 독서체험이라는 것이 작품의 서스펜스를 높여 준다. 라티머는 경찰도 아니고 사설탐정도 아닌데 그는 탐정처럼 행동한다. 자료를 모으고, 증언을 비교하고, 과거를 재구성하고, 인물의 행동을 추론한다. 따라서 『디미트리오스의 관』은 아마추어 탐정소설의 전통을 국제첩보 미스터리로 확장한 작품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디미트리오스의 관』의 문학적 가치
이 작품의 문학적 깊이는 악을 단순하게 묘사하지 않는 데에 있다. 작중의 가장 중요한 대상인물인 디미트리오스는 기본적으로 악인이지만 그는 혼자 활동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정치적 환경과 국제관계 그리고 인간의 욕망 등이 매우 복잡하게 연관되어 있다. 그리고 그의 살 자체가 국죄 범죄의 운명적인 상황 속에 놓여 있다. 결국 이 소설을 다 읽은 독자들은 악한 인간이 세상을 타락시키는가, 아니면 타락한 세계가 악한 인간을 만들어내는가? 이와 같은 본질적이고 포괄적인 질문을 하게 된다. 이 질문이 이 작품을 단순한 추리소설 이상의 철학적 작품으로 만들게 된다. 디미트리오스는 개인적 범죄자이지만 그가 활동하는 공간은 사회적이다. 그는 정치적 혼란과 국제적 갈등을 이용한 범죄자이다. 그래서 이 작품은 사실상 범죄사회학적 추리소설의 성격을 갖는다. 범죄자를 제거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범죄자가 계속 만들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를 작가가 독자에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나의 생각
나는 1930년대 유럽의 국제범죄와 정치공작을 다루는 이 소설이 추리소설사의 역사적 가치를 높이는 측면을 높이 평가한다. 그러나 현대의 국제 첩보정치 스릴러는 고전적인 추리소설의 지적 혹은 두뇌게임 같은 미시적인 흥미를 잃어버릴 위험을 지적하고 싶다. 이 소설은 고전적 범인 찾기에서 현대적인 국제정치, 범죄로 규모를 확장시켜 쇼킹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구조를 만들어 냈다. 그의 혁신은 범죄를 더욱 크게 만들고 나아가 범죄의 배후에 존재하는 세계까지 추리의 대상으로 만들어서 추리물의 세밀한 추리와 집중력을 오히려 방해하는 면이 있다. 하지만 『디미트리오스의 관』의 독창적인 점은 죽은 범죄자의 시체를 출발점으로 그의 인생 전체를 밝혀낸다는 작가 앰블러의 설정을 정말 높이 평가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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