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초엽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추리 SF인가.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의 소개
이 소설은 2017년 「관내분실」로 제2회 한국과학문학상 중단편 대상을 그리고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으로 가작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이 두 작품을 수록한 첫 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출간 이후 독자와 평단의 주목을 받았는데, 2019년 제43회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했다. 또한 중국의 대표적 SF 문학상인 중국성운상 번역작품 부문 금상과 은하상 최고 인기 외국작가상을 동시 수상하면서 국제적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현재까지 40만 부가 판매되었으며, 10여 개국에 판권이 수출되었다. 그런데 김초엽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표면적으로는 우주항법, 냉동수면, 웜홀이라는 과학기술을 다루는 SF지만, 조금 다른 각도에서 보면 사건의 진실을 추적하는 추리소설로도 읽을 수있다. 한 인간에게 왜 이런 비극이 발생했는가를 추적하는 심리적 그리고 사회적 추리소설로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추리소설로서의 스토리 재구성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의 주인공은 안나라는 여성 과학자다. 작품이 시작될 때 안나는 이미 아주 늙은 노인이다. 그런데 그녀는 우주정거장에서 떠나지 않고 슬렌포니아 행성계로 가는 우주선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데 우주정거장은 이미 오래전에 폐쇄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문제는 안나가 왜 그렇게 오랫동안 그곳을 떠나지 않았는가이다. 작품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현재와 과거를 오가면서 조금씩 밝혀간다. 이것은 추리소설의 방식으로 파헤치는 것이 꽤나 유효한 방식이 될 것이다.
먼저 첫 번째 추리는 안나는 어떤 과학자였는가 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젊은 시절 안나는 인간의 우주 이주를 가능하게 하는 딥프리징(Deep Freezing), 즉 냉동수면 기술을 연구한 과학자였다. 인류가 다른 행성으로 이동하려면 엄청난 시간이 필요하다. 인간의 수명은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우주선을 타고 먼 행성으로 이동하는 동안 살아 있을 수 없다. 안나의 연구는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었다. 인간을 냉동수면 상태에 넣으면 장기간의 우주여행이 가능해진다. 따라서 안나의 기술은 단순한 의학 기술이 아니라 인류의 우주 이주를 가능하게 만드는 핵심 기술이었다. 그런데 바로 이 지점에서 작품의 첫 번째 비극이 발생한다. 가족에 관한 추리의 부분이다. 안나에게는 남편과 아들이 있었다. 남편과 아들은 새로운 삶을 찾아 슬렌포니아 제3 행성으로 이주한다. 안나 역시 그들을 따라갈 예정이었다. 하지만 안나는 자신의 연구를 완성해야 했다. 따라서 가족들이 먼저 떠나고, 안나는 지구에 남아 연구를 계속한다. 이것은 단순한 가족의 이별이 아니다. 안나는 자신의 연구가 성공하면 곧 가족에게 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즉, 조금만 기다리면 다시 만날 수 있다는 믿음이 그녀를 지탱하고 있었다. 그런데 안나가 개발하던 냉동수면 기술보다 훨씬 효율적인 웜홀 항법이 등장한다. 웜홀을 이용하면 인간이 냉동수면을 하지 않고도 훨씬 빠르게 다른 행성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그러자 세상의 관심은 안나의 기술에서 웜홀 항법으로 완전히 옮겨간다. 안나가 오랫동안 연구한 기술은 순식간에 시대에 뒤떨어진 기술이 되어버린다. 그런데 더욱 잔혹한 문제가 발생한다. 슬렌포니아에는 웜홀 통로가 없었다. 따라서 다른 행성으로는 훨씬 빠르게 갈 수 있게 되었지만, 정작 안나의 가족이 있는 슬렌포니아로 가는 길은 사라져버린 것이다. 여기서 작품의 역설이 완성된다. 인류 전체는 발전했지만 안나 개인에게는 오히려 퇴보가 일어난다. 기술은 발전했는데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는 길은 사라졌다. 안나는 그래도 연구를 완성한다. 그러던 어느 날 슬렌포니아로 향하는 마지막 우주선이 출항한다는 소식을 듣는다. 이것은 안나에게 마지막 기회였다. 그녀는 연구 발표를 서둘러 끝내고 우주선에 타려고 한다. 하지만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해 출발 시간이 지연된다. 결국 안나는 마지막 우주선을 놓친다. 이것이 이 소설에서 사실상 모든 비극의 출발점이다. 안나는 단 몇 시간, 혹은 아주 짧은 시간의 차이로 가족에게 갈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잃어버린다. 그 뒤 그녀는 포기하지 않는다. 안나는 자신처럼 목적지로 가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진 우주정거장에서 기다린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다. 10년이 지나고, 수십 년이 지나고, 100년이 넘는다. 우주항법은 계속 발전한다. 그러나 슬렌포니아로 가는 길은 다시 열리지 않는다. 결국 그 우주정거장은 폐쇄된다. 그런데도 안나는 떠나지 않는다. 그녀는 냉동수면과 해동을 반복하면서 언젠가 슬렌포니아로 가는 길이 다시 열릴 것이라는 희망을 품는다. 이때부터 안나는 단순한 과학자가 아니다. 그녀는 자신의 인생 전체를 '기다림'이라는 하나의 행위에 걸어버린 인간이 된다. 나중에 우주정거장은 폐쇄되었고, 폐기와 회수를 담당하는 직원이 노인이 된 안나를 발견한다. 직원은 그녀에게 이곳은 이미 오래전에 폐쇄되었다고 설명한다. 슬렌포니아로 가는 우주선도 없다. 앞으로도 올 가능성이 없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안나의 가족들은 이미 죽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10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기 때문이다. 이 장면은 추리소설적인 관점에서 보면 상당히 중요하다. 독자는 이때 비로소 하나의 질문을 완성하게 된다. 그렇다면 안나는 도대체 무엇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인가? 그리고 더 근본적인 질문이 생긴다. 안나는 왜 이 모든 사실을 알면서도 기다렸는가? 직원은 안나를 설득한다. 이제 슬렌포니아행 우주선은 오지 않는다. 가족들은 이미 세상을 떠났을 것이다. 그런데 안나는 그것을 모르는 것이 아니다. 그녀도 알고 있다. 남편도 죽었을 것이다. 아들도 죽었을 것이다. 자신이 슬렌포니아에 도착한다고 해도 그곳에는 자신이 기억하는 가족이 존재하지 않을 가능성이 거의 확실하다. 그런데도 안나는 간다고 말한다. 그 이유가 이 작품의 핵심이다. 안나가 가고 싶은 곳은 단순히 남편과 아들이 있는 장소가 아니다. 그곳은 자신이 한때 가족과 함께 살기로 약속했던 곳이다. 즉 슬렌포니아는 잃어버린 과거와 자신의 삶이 마지막으로 연결되는 장소다. 안나는 자신이 가야 할 곳을 정확하게 알고 있다고 말한다. 엔딩에서 결국 안나는 낡은 셔틀을 타고 떠난다. 그 셔틀로는 슬렌포니아에 도착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설령 도착한다고 해도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런데 안나는 출발한다. 여기서 작품은 일반적인 SF의 방식과 정반대 방향으로 간다. 보통 SF라면 새로운 기술이 인간의 한계를 극복한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아무런 기적도 일어나지 않는다. 안나는 웜홀을 발견하지 않는다. 죽은 가족이 살아나는 것도 아니다. 새로운 초광속 항법이 갑자기 등장하지도 않는다. 안나가 목적지에 성공적으로 도착하는지도 보여주지 않는다. 그녀는 단지 갈 수 없는 곳을 향해 출발한다. 그래서 이 작품의 진짜 엔딩은 '도착'이 아니라 출발이다. 그리고 작품의 마지막에는 이런 인식이 남는다. 인간은 아직 빛의 속도에도 도달하지 못했다. 이것이 제목과 연결된다. ‘빛의 속도’는 단순한 과학적 속도가 아니라 인간이 사랑하는 존재에게 도달하고자 할 때 부딪히는 거리와 시간과 죽음이라는 궁극적인 장벽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추리소설로서의 가능성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는 추리소설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처음 독자가 만나는 것은 이상한 현재다. 폐쇄된 우주정거장에 왜 한 노인이 계속 남아 있는가? 이것이 첫 번째 추리이 대상이다. 그리고 이야기는 과거로 이동하면서 그 답을 찾는다. 그리고 가족의 이주와 냉동수면 연구 그리고 웜홀의 발견과 이후 슬렌포니아 항로의 폐쇄, 마지막 우주선 그리고 안나의 실종에 가까운 기다림이라는 인과관계가 차례로 밝혀진다. 안나라는 노인의 비극에 대한 원인을 추적하는 추리로 이야기가 밝혀진다. 그리고 추리소설에서의 미스테리는 안나라는 인간 자체인 것이다. 미스테리한 이상한 노인 안나는 왜 폐쇄된 정거장을 떠나지 않는가? 왜 존재하지 않는 우주선을 기다리는가? 왜 자신의 가족들이 이미 죽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떠나지 않는가? 독자는 작품을 읽으면서 계속 안나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해석해야 하는 추리소설의 경험을 하게된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깨닫는다. 안나는 미친 것이 아니고 모든 걸 알면서도 기다린 것이다. 이것은 추리소설에서 매우 중요한 캐릭터 행동의 동기(motive)와 유한한 구조이다. 범죄자의 동기를 추적하는 대신 한 인간의 선택을 설명하는 동기를 추적하는 것이다.
독자의 추리를 유도하는 방식
이 작품에는 전통적인 탐정이나 경찰은 없다. 그 대신 독자가 탐정의 역할을 맡는다. 독자는 처음부터 모든 정보를 얻지 못한다. 처음에는 “왜 이 노인은 여기 있는가?” 라는 의문을 갖는다. 그다음 “왜 슬렌포니아에 가려고 하는가?” 를 알게 된다. 그다음 “왜 가지 못했는가?” 를 알게 된다. 그리고 “왜 그렇게 오랫동안 기다렸는가?” 를 추적한다. 마지막에는 “가족이 이미 죽었는데도 왜 떠나는가?” 라는 질문에 도달한다. 이것은 전통적인 추리적 기법과 상당히 유사하다. 따라서 이 작품을 추리소설적으로 읽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추리소설의 개념을 겉으로 드러난 현상 뒤에 숨겨진 원인과 진실을 논리적으로 추적하는 행위로 봐야 한다.
나의 생각
나는 이 소설이 SF와 추리소설의 결합이라는 측면에서 바라볼 마음으로 책을 읽었다. 이 작품의 흥미로운 점은 우주공간 즉 SF가 추리의 무대가 된다는 것이다. 무한한 공간인 우주정거장은 소설에서 밀실처럼 기능한다. 그리고 시간은 사건의 기록을 숨기는 장치가 된다. 그런데 웜홀은 사건의 인과관계를 뒤틀어 놓는다. 그리고 안나는 과거 사건의 살아 있는 증거가 된다. 그리고 따라서 SF의 장치들은 사건의 원인을 숨기고 드러내는 장치가 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이 작품은 SF이면서 동시에 심리적 미스터리라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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