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언 플레밍의 『죽느냐 사느냐』(Live and Let Die)

영화화된 첩보 액션소설
이언 플레밍의 『죽느냐 사느냐』(Live and Let Die, 1954)는 그의 두 번째 제임스 본드 소설이다. 죽느냐 사느냐 이 작품은 흔히 첩보 액션소설로 분류되지만, 추리소설의 관점에서 보면 플레밍이 고전적 탐정소설의 추리를 첩보전과 심리전, 잠입과 생존의 서사로 변환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상당히 중요하다. 『죽느냐 사느냐』의 추리소설사적 의의는 기존 추리소설계에서 탐정이 범인을 밝혀내는 이야기에서 첩보원이 적의 의도를 추리하여 살아남는 이야’로 추리의 개념을 확장했다는 데 있다고 평가 받는다. 영화는 그 추리를 대중적 액션과 결합시켜 훗날의 본드 영화가 확립하게 되는 하나의 공식을 만들어냈다는 데 가치가 있다. 1973년 로저 무어 주연의 영화 죽느냐 사느냐는 같은 제목과 인물의 일부를 사용하지만 원작의 줄거리를 상당히 변형했다.

스토리 속으로
소설에서 영국 정보부의 제임스 본드는 M의 지시로 뉴욕에 파견된다. 목표는 할렘의 거물 범죄조직 두목 미스터 빅(Mr. Big)이다. 그는 단순한 갱스터가 아니라 소련의 첩보기관 SMERSH와 연결된 인물로 의심받고 있다. 문제의 단서는 17세기의 해적 헨리 모건이 남긴 금화다. 이 금화들이 뉴욕과 플로리다에서 발견되는데, 본드는 그것이 자메이카의 보물과 연결되어 있으며 미스터 빅이 이를 밀수해 얻은 돈을 소련 첩보활동에 제공한다고 추론한다. 여기서 플레밍의 추리 방식이 나타난다. 이 작품의 첫 번째 추리적 특징은 ‘범인의 흔적을 사건 현장에서 찾는 방식’이 아니라, 서로 무관해 보이는 정보들을 하나의 국제적 음모로 연결하는 방식이다. 전통적인 추리소설에서 범인은 자신의 정체를 숨기지만 미스터 빅은 상당히 독특하다. 그는 자신의 존재를 완전히 숨기지 않는다. 오히려 공포와 소문을 이용하여 자신을 둘러싼 신화를 만들어낸다. 그는 부두교의 힘을 이용하고, 자신이 죽음의 신 바론 사메디의 화신이라는 믿음을 조직원들에게 심는다. 원작에서 가장 흥미로운 추리 장치 가운데 하나가 솔리테어(Solitaire)다. 그녀는 미래를 점치는 능력을 가진 여성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플레밍은 그녀의 능력이 정말 초자연적인 것인지 명확하게 확정하지 않는다. 이 모호성이 중요하다. 미스터 빅은 솔리테어의 점괘를 이용하여 사람을 통제한다. 그런데 본드가 등장하자 솔리테어는 타로카드를 이용하여 미스터 빅을 속인다. 즉 카드가 미래를 예언하는 것이 아니라 카드를 읽는 행위 자체가 정보전의 수단이 된다. 솔리테어는 본드가 진실을 말하고 있는지 알고 있지만, 미스터 빅에게는 본드의 신분을 다르게 해석해준다. 결국 ‘거짓 점괘’가 본드를 살리는 트릭이 된다. 제임스 본드는 거대한 범죄 조직의 구조를 추적한다. 그는 미스터 빅이 열대어를 운반하는 사업을 이용하여 금화를 밀수한다는 사실은 중요한 사례다. 그는 독성이 강한 열대어가 들어 있는 수조의 밑에 금화를 숨겨 운반한다. 본드는 범죄 조직의 물류 시스템을 추적하면서 이 구조를 알아낸다. 그런데 작품에서 가장 잔혹하면서도 추리소설적으로 중요한 부분은 CIA 요원 펠릭스 라이터의 사건이다. 라이터는 미스터 빅의 조직을 조사하다가 붙잡히고, 상어가 있는 곳에서 심각한 부상을 입는다. 결국 한쪽 팔과 한쪽 다리를 잃은 채 발견된다. 그의 몸에는 미스터 빅의 잔혹성을 과시하는 메시지가 남는다. 이 사건의 기능은 단순한 잔혹 묘사가 아니다. 그것은 본드에게 범인의 성격과 다음 행동을 알려주는 하나의 거대한 단서가 된 것이다.

상어에게 먹히는 죽음
소설 원작의 클라이맥스는 영화와 특히 크게 다르다. 미스터 빅은 본드와 솔리테어를 배에 묶어 상어가 있는 산호초 위로 끌고 가려 한다. 피 냄새가 상어를 유인하도록 만들어 두 사람을 살아 있는 미끼로 사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플레밍 특유의 역전이 있다. 본드는 이미 미스터 빅의 배에 폭발물을 설치해 놓았다. 즉 미스터 빅은 본드를 죽이는 함정을 준비했지만, 본드는 그 함정 속에서 이미 반격의 장치를 준비해둔 것이다. 이것이 플레밍의 핵심적인 트릭 구조다. 말하자면 적이 만든 함정을 본드가 알아채고 이 함정 속에서 역으로 함정을 설치하여 적의 무기가 오히려 적을 파괴한다. 이것은 범인이 만든 트릭을 탐정이 해결하는 추리소설의 구조가 첩보소설에서는 적의 작전을 역이용한다는 구조로 변형된 것이다.
영화와 원작의 차이
1973년 영화는 원작의 이름과 기본적인 인물관계만 상당 부분 차용하고 범죄의 동기와 사건 구조를 크게 바꾸었다. 가장 큰 변화는 다음과 같다. 먼저 가장 큰 적인 미스터 빅이 SMERSH 관련 범죄자로 바뀌었고 해적들이 보물과 금화 밀수가 영화에선 대규모 헤로인 밀매로 변했다. 문제적 여성인 솔리테어가 소설에서는 점술가였지만 영화에서는 솔리테어가 타로 점술가로 나온다. 소설에서는 라이터가 상어에게 당해 죽는 장면이 끔찍한데, 영화에서는 이 사건을 삭제했고 미스터 빅이 폭발로 죽는 것도 칸앙가가 기압탄에 의해 폭발사건을 달라졌다. 상대적으로 어두운 첩보물에 유머와 액션 그리고 오락성을 강화했다고 볼 수 있다. 영화에서 미스터 빅은 카리브해 국가 산 모니크의 지도자 닥터 칸앙가의 또 다른 신분으로 설정된다. 그는 미국에 헤로인을 대량 공급하려 하고, 본드는 뉴욕에서 시작하여 뉴올리언스와 산 모니크로 사건을 추적한다. 따라서 영화는 원작의 금화와 국제첩보를 마약과 국제범죄로 현대화했다고 볼 수 있다.
영화의 액션과 소설의 추리
영화에서는 추리보다 볼거리가 앞선다. 원작의 본드는 끊임없이 관찰하고 추론하여 행동한다 그러나 반면 영화에서는 이 과정이 상당 부분 액션으로 대치된다. 그래서 영화에는 원작에 없는 여러 장면이 들어간다. 대표적으로 악어 등에 올라가는 탈출 장면과 자동차 추격씬 그리고 스피드보트 추격과 2층 버스 추격사건등은 손에 땀을 쥐게하는 액션씬들이다. 그리고 거기에 등장하는 과장된 악당 캐릭터와 다소 능력이 없어 보이는 코믹한 경찰 캐릭터 등도 한몫한다. 이것은 1970년대 영화산업과 당시 미국 범죄영화의 영향을 반영한 변화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원작은 첩보추리소설에 가깝고 영화는 첩보 액션 어드벤처에 가깝다. 한편 원작의 솔리테어는 처음부터 본드를 보호하려는 적극적인 인물이다. 그녀는 미스터 빅에게 본드의 정체를 잘못 알려줌으로써 본드를 살린다. 반면 영화에서는 솔리테어의 타로카드 자체가 추리와 유혹의 장치가 된다. 본드가 타로카드를 이용하여 그녀에게 접근하고, 카드가 만들어내는 운명의 이미지를 이용한다.
첩보추리물로서의 가치
『죽느냐 사느냐』의 진정한 가치는 첩보전과 범죄수사를 하나의 구조로 결합했다는 점이다. 본드의 임무는 단순히 미스터 빅을 죽이는 것이 아니다. 그는 미스터 빅의 은신처를 찾아내고 거대한 악의 조직을 파괴한다. 따라서 이것은 하나의 거대한 국제범죄 추적수사다. 현대 첩보소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정보망·자금망·밀수망·국제범죄조직을 추적하는 수사 구조가 이미 이 작품에 나타난다. 플레밍 측에서도 이 작품을 뉴욕에서 플로리다를 거쳐 자메이카로 이어지는 이국적 공간의 모험과 함께 SMERSH에 자금을 제공하는 범죄망을 추적하는 이야기로 소개한다. 결국 『죽느냐 사느냐』는 고전적인 탐정소설의 퍼즐을 해체하고 그것을 첩보소설의 행동 추리로 바꾼 작품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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