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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역은 1979년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이다. 앞에서 포스팅한 정지아의 아버지는 이데올로기를 간직한 죽은 아버지에 대한 내용이라면 두 번째 신경숙은 아버지 삶의 곡절이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은 며칠 전에 죽은 아버지의 이야기인데 그가 아버지인줄 몰랐던 담담한 느낌이 압축된 느낌이다. 12년간 시를 썼던 윤후명에게는 그의 개인적 소설사에 있어서 매우 특이한 작품이다. 거의 일인칭 서술화자 시점으로 집필되는 그의 소설에 있어서 유일한 삼인칭 시점이면서 문단 데뷔작이기 때문이다. 한 작가의 기념비적인 작품은 그의 정신사적 흐름의 기점에 서는 예가 많다. 이 작품 역시 시와 소설의 장르적 한계의 극복 혹은 결합이라는 측면에서 의의를 갖는 작품이 아닐 수 없다.
작품의 수사학적 완성도에서 본다면 산역은 자아의 정체성에 대한 강렬한 감수성이 시적 상징들과 소설적 아이러니에 의해 적절히 조화된 수작이다. 또한 상징과 아이러니라는 소설수사학 뿐만 아니라, 존재의 근원과 생래적 외로움의 문제를 삼인칭 서술화자시점을 사용해 서정적으로 형상화해 내고 있다. 그러나 작중에서 드러나는 고립감은 그녀만의 것이 아니다. 그 고립감은 작중 주인공인 그녀의 친부인 최씨와 불우한 부부인 그녀의 양부와 생모에게 모두 해당되고 있다. 말하자면 인간의 삶은 논리나 인과로써 설명될 수 없는 정체 모를 운명에 의해 감당하기 벅찬 고립감에서 비롯된 외로움이 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논리로 설명이 되지 않는 현상은 당연히 시적 상상력으로 형상화될 수밖에는 없다. 그것은 바로 이 소설이 왜 서정적 색채를 동원했는가 하는 요인을 말하여 주는 것이다.
시인에서 소설가도 당선된 그의 소설에 대한 당선심사평은 다음과 같다. -시적 감성의 뛰어난 묘사뿐만 아니라 죽음에 대한 어두운 세계와 불우한 부부의 그 운명을 바다의 이미지와 소녀의 눈을 통해 앰비밸런스의 효과를 주고 있어 이른바 「전면적 현실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소녀를 통해 운명의 정체성을 온몸으로 느끼고 삶 전체의 현실감을 부각시키는 것은 이 소설의 상징성과 이야기 구조의 아이러니함에서 온다. 전면적 현실감은 리얼리티의 획득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그것은 12년간 시인으로 활동했던 작가에게서는 상당량 고충이 있었을 터였다.
“시를 쓰다가 소설을 쓴다는 것은 말하자면 문학적 패러다임을 바꿔야 하는 것인데 저로서는 상당히 어려웠죠, 그래서 자신이 가장 잘 아는 이야기를 써야 한다는 생각으로 저의 에피소드를 변형을 시킨 다음 몇 군데 사용해서 집필했던 것입니다. 저로서는 기념비적인 작품이지만 기존 소설의 틀을 따랐는데 저로서는 좋아하는 방법은 아닙니다”
작가 스스로 언급한 부분에서 드러나는 것은 시에서 소설로 장르를 바꾸는데 있어서 어려움이다. 그것은 기존의 소설 문법을 지키면서도 시적인 글쓰기로의 훈련된 집필방식을 유지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결국 시와 소설이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인식에서부터 탄생한 산역은 그 주제 의식 역시 양 장르의 결합된 상태에서 파악될 수 있다. 절실한 고립감은 서사적 이야기 흐름인 아이러니컬한 플롯과 시적 상징물, 즉 서정적 질료들에 의해 복합적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스토리 전개상 생략된 사실들은 숨겨지거나 고의로 인물들이 참고 있는 비밀들이다. 그중 가장 강한 긴장을 주는 플롯이 집주인 최씨와 그녀가 부녀 관계라는 것이다. 최씨의 죽음은 그에게 집과 생활을 신세지고 사는 부부와 그의 딸에게는 커다란 사건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최씨의 묏자리를 아는 유일한 사람이 바로 그를 미워하는 그녀인 것이다. 최씨 아저씨는 임종시 새로 산 산꼭대기의 자기 묏자리를 그녀가 알고 있다는 말을 유언처럼 남긴다. 그는 단지 바닷가 보인다는 이유로 불모의 산을 매입하고 그 자리에 묘를 쓰기로 작정한다. 그리고 그 장지를 딸에게만 알려주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아내에 대한 분노, 딸(가족)에 그리움에서 오는 외로움, 자신을 실종처리한 군 당국에 대한 억울함, 아내와 재혼한 친구에 대한 증오 등등이 작중에 숨겨져 있다. 그리고 그러한 고립감은 죽은 뒤의 음택인 묘지의 위치에 의해 상징화되고 있다.전쟁이 끝나고 아내가 자신의 실종 소식으로 재가한 후 다시 돌아왔을 때 최씨의 고립감은 스스로 묏자리를 그 집과 반대 방향으로 잡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최소한 바닷가 보이는 쪽으로 향을 잡았다. 외로움을 이기는 그의 유일한 방법은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일해 왔고 바다를 보면서 외로움을 달래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친구의 아내와 결혼한 후 그 친구가 다시 살아왔을 때 재혼한 친구의 감정은 죄책감과 그 친구와의 상대적으로 생기는 고립감이 있었으리라. 그리고 그는 친구인 최씨에게 집과 생활의 여러 부분에서 신세를 지고 있기 때문에 그 괴로움은 배가되었을 것이다.
작중에서 양부의 몰락은 그녀에게 운명적인 어떤 힘을 감지하게끔 한다. 백계 러시아인들의 방랑의 춤을 보면서 생래적인 외로움을 느껴 무용가가 되겠다던 꿈은 그의 부친에 의해 좌절되었고, 최후로 차린 작은 음료에 이르기까지 공장 퇴직금으로 차린 강정음료공장 등의 사업은 물론이고 젊은 시절 무용가가 되겠다던 꿈까지 아버지는 한 번도 성공한 인생을 산 적이 없는 사람이다. 결혼에서조차 그랬다. 그는 최씨의 딸을 키웠고 결국 최씨의 상속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녀는 최씨의 자식으로서의 관계는 과거의 시간 속에 숨겨져 있었고 가족과 최씨에 의해서는 공공연한 비밀이 되어 왔다. 그리고 그녀의 고립감은 언젠가 그녀가 밤바다 여행에서 느꼈던 외로움을 통해 상징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녀의 아이러니를 통한 현실 인식을 더욱 강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바로 그녀가 친부에게 품는 반감이고, 그 전환을 일시에 용수철처럼 솟아오르게 하는 힘이 가족에 의해 억눌러져 왔던 비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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