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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준의 <밤길>은 1940년. 문장 5,6,7월 합병호에 실린 단편이다, 작품의 배경은 인천월미도의 칠흑같은 한밤중이다. 이 작품에서 주로 관심이 가는 부분은 인물의 성격창조의 효과에 관해서이다. 인물 설정은 소설창작의 가장 중요한 근간이라 할 수 있다. 소설의 궁극적인 목표는 새로운 인간형의 창조라는 입장에 서면, <밤길>은 소설의 원형적인 인물을 독자에게 제시한다고 할 수 있다.
소설의 스토리가 누구의 이야기인가 하는 관심은 곧 등장인물의 설정이 얼마만큼 중요한가를 말해주는 것이 된다. 등장인물을 보다 생생하게 설정하기 위하여 작가가 사용하는 보편적인 방법은 등장인물을 극한적인 상황에 설정하는 것이다. 그렇한 상황에서 나타나는 캐릭터의 본성이 가장 절박하고 리얼리티를 획득하기에 적당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작품은 황서방이라는 인물을 극한 상황 속에 놓여 있다. 서울의 수표교 다리 부근에서 행랑 살이를 하다가 가난에 쫓겨 인천으로 건축 공사판의 품팔이를 하러 온 황서방에게는 서울에 두고 온 처자가 있다. 품을 부지런히 팔아서 돈을 벌어야겠는데 장마가 시작된다. 이러한 상황에 놓인 황서방에게 찾아온 것은, 아내가 도망가고 내버린 두 딸과 핏덩이 하나뿐이다. 돈은 한푼도 없고 장마비는 계속하여 쏟아지고 핏덩이는 곧 숨이 넘어가려고 한다. 도망간 아내에 대한 분노와 맨손으로 받아 안은 자식들 앞에서 주인공은 오도가도 못할 절망의 극한적인 상황에 놓이게 된다.
작품의 모두는 거의 보름째의 장마비가 배경이 되고 있는데, 이것은 인위적인 배경의 설정이라고 할 수 있다. 즉 황서방을 극한 상황에 빠뜨리기 위한 기법으로써 현진건의 운수좋은 날에서 아내의 죽음을 암사하는 비의 장치와 유사하다. 황서방은 절망의 상황에 처하여 그것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 바를 모른다. 우매한 인간이 그러하듯 절망에 처하여 울부짖으며 달아난 아내를 저주하고 비가 쏟아지는 하늘을 쳐다보며 신음할 뿐이다. 주변인물인 권서방은 황서방과는 대조적으로 이지적인 인물이다. 주요인물이 이성을 잃을 때 부인물이 이성을 찾아 행동하게 하는 것은 전통적인 인물 설정의 방법이다. 앓는 아이를 안고 비오는 밤길을 걸어가는 등장인물들은 궁극적으로 인간 긍정의 휴머니스트이다. 새 집에서 아이가 죽어나가게 하는 것은 집주인에게 못할 짓이라는 권서방의 말에 황서방이 동의하는 것은 그가 아직도 인간생활의 법도와 도덕을 지키는 정상인임을 나타내주는 것이다.
성격창조의 방법을 주동인물과 주변인물로 대조시키는 것은 인물관계망 설정에서 자주 쓰이는 방식이다. <밤길>은 이와 같은 방식을 그대로 밟아가는 작품으로 단편소설의 특질을 잘 나타내고 있다. 땅을 파고 아이를 묻으려고 하다가 아이가 아직도 살아 있는 것을 보고 놀라는 장면은 플롯의 절정에 해당한다.
소설의 끝 장면의 대화에서 두 인물의 성격이 다시 대조된다. 권서방은 슬픔이니 눈물이니 하는 애상적인 것은 중요시하지 않고 어디까지나 실제적이다. 개울에 떠내려간 고무신 한짝이 아이 무덤에 대한 미련보다 더 소중한 것이다. 고무신 한짝과 아이의 죽음을 놓고 양자가 생각하는 바가 이렇게 상이한 것은, 하나는 죽은 아이의 아버지요 하나는 그 아버지의 친구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작가의 인물설정 의도는 두사람을 극명하게 대조를 시킴으로써 양쪽의 인간형을 보다 두드러지게 창조해내기 위한 방편 때문이다. 황서방의 비애가 어떻게 발전되는가 하는 문제에 작가의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극한 상황에 처하여 황서방과 권서방이 어떻게 대응하는가 하는 문제에 관심이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의 대단원은 이와 같은 짤막한 배경 묘사로 끝난다. 즉 황서방의 비애가 어떻게 진전되는가를 중요시하는 것이 아니라, 두 인물의 성격을 대조해 놓고 나서 평범한 배경묘사로서 작품을 끝냄으로써 이 작품은 인물설정과 그 성격창조의 대응에 주된 관심이 있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밤길>의 인물 설정은 작가의 의도적인 대비를 통해 인물의 성격을 창조해내는 방식으로 핀트가 잘 맞아서 효과를 거두었다고 할 수 있다. 숨이 넘어가려는 아이를 놓고 아이를 새 집에서 죽게 할 것인가, 아니면 날이 새기 전에 묻어버릴 것인가 하는 문제에 관하여 두 사람이 서로 합의가 이루어지는 것은 성격대조의 포기가 아니라, 작품의 핀트를 명료하게 하려는 의도에서인 것이다.
이 작품의 뛰어난 점은 작품의 절정에 효과적으로 도달하기 위한 수단으로 상이한 인물 설정을 꾀했다는 데 있다. 권서방이 만일 황서방의 비애와 분노에 맞장구를 친다면 이 작품은 평범한 효과에 머물고 말았을 것이다. 황서방이 자발적으로, 앓는 아이가 이왕에 죽을 목숨이니 아무 데나 묻어버리자고 생각했다면 <밤길>은 무미건조한 작품이 되어버렸을 것이다. 그야말로 배경에 묻혀서 인물이 독창적으로 형상화 될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절망과 비애가 주조를 이루면서도 온정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게 하는 것은 칠흑 같은 어둠과 주동인물과 주변인물의 대응을 통한 성격창조의 효과 때문이다. 이렇게 이태준은 스스로를 일제강점기하에서 인물형상화에 있어서는 대단히 뛰어난 작가임을 드러내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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