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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의 혼란스러운 시대관과 여성의 문제를 부각시킨 <불신시대>는 박경리의 출세작이자 당대로서는 문제작이므로 그의 개인적 소설사에 있어서 의미 있는 작품이다. 이 소설은 전후 불안한 미망인의 삶을 그리고 있다. 작품에서는 전쟁이라는 대상이 하나의 상징물처럼 여인에게 삶의 의미인 남자들을 뺏아간다. 그리고 삶의 방패막이라 할 수 있는 남자 없는 여인들의 삶은 불안하고 세상을 믿을 수 없는 괴로움에 시달린다.
작품은 모두에서부터 남자들의 죽음과 그 끔찍한 장면으로부터 충격을 받은 작중 주인공 진영이 소위 과부가 되는 데에서부터 이야기가 전개된다. 미망인이 된 진영은 남편의 죽음과 괴뢰군 소년의 죽음 장면이 선연히 남아 아들 문수와 홀어머니와 함께 전쟁 후 서울로 돌아와 생활을 계속하지만 자신도 없고 생활도 막막했다. 그녀는 사회 전체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을 갖게 된다. 그러던 중 아들 문수마저 급사하게 된다.
진영은 어이없게 의사의 부주의로 그리고 당대 사회 현실 때문에 아들을 잃었다. 전쟁 직후 궁핍한 사회 물정은 병원에서의 기자재나 의약품의 부재를 야기시켰고 의사는 그러한 악조건 속에서 수술이자 진료를 하게 되었다. 이로써 진영은 막연한 사회불신에서 구체적이고 원한의 감정이 맺히는 불신감으로 대사회의식을 갖게 된다.
이처럼 전쟁은 진영으로 상징되는 당대의 여인들에게 남편과 자식을 빼앗음으로써 비탄에 빠트리게 하는 원인이 되고 있고 전후의 생활도 불안과 불신으로 시달리게 한 것이다.
아들이 죽고 난후 처음부터 찜찜한 기분으로 찾아간 절은 최소한의 시주금인 이천환을 내고 아침부터 불공을 드려 달라고 주지를 조르다가 결국 박대를 받게 된다. 불공도 엉터리로 다음 사람에 밀려 드리는 둥 마는 둥하고 아침 밥을 먹고 가려는 어머니에게 진영은 울음을 참으며 그냥 가자고 조른다.
중들은 불공을 드리는 내내 돈이 작다느니 정성이 없다느니 하며 돈을 더 요구했고 염불도 하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서장 부인이 오니까 서둘러 진영의 불공을 마쳐 버린 것이다. 그나마 집으로 돌아가는 그녀에게 돈이 작아 먹고 살 수가 없다면서 타락한 종교인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진영은 그 이상 견딜 수가 없어서 내버려두었던 몸을 끌고 H병원으로 갔다. 그러나 그곳에도 일주일 멀다 하고 가는 것을 중단하고 말았다. 얼마 남지 않은 돈은 생활비로 써야 한다는 이유도 있었다. 그러나 직접의 동기는 외국제 주사약의 빈 병을 팔아 버리는 장면을 본 때문이었다. Y병원에서는 주사약의 분량을 속였고, S병원은 엉터리였고, H병원에서는 빈 약병을 팔았다.
진영의 사회 불신은 목숨을 다루는 인술의 현장인 병원에서 뼈에 사무치는 배신감을 갖게 된다. 아들 문수를 잃고 자신의 병마저 깊어졌지만 그녀로서는 더 이상 병원을 신뢰할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이러한 그녀에게 유일한 희망은 갈월동 아주머니에게 맡겨 준 곗돈을 찾아 장사를 하려는 의욕뿐이었다. 그러나 그 희망마저 날아가게 되었다. 갈월동 아주머니가 같은 신자에게 돈 오십만 환을 빌려주었는데 돈받은 사람은 죽고 일을 봐주겠다는 사람은 어음을 주지 않는 것이었다. 그들은 돈을 빌리려고 아주머니에게 전도된 척 영세까지 받은 것이다.
더 이상 막바지로 몰릴 수 없는 진영은 새벽같이 일어나 진작부터 실행하려고 한일을 단행한다. 그녀는 삶에의 새로운 의지를 불태우기로 한 것이다. 절로 가서 아들 문수의 사진과 위패를 찾아와서는 신속에서 불태우는 것이었다. 진영은 더 이상 세계의 폭력에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갈데까지 간 것이다. 남편도 아들도 돈도 잃은 상태에서 그녀는 더 이상 갈 곳은 없었다. 그녀의 강한 의지는 소설의 마지막이 상징성을 배가시키고 있다.
전쟁과 전후의 어려운 삶을 배경으로 그려진 <불신시대>는 주인공 진영이 겪은 고통과 대사회적인 불신감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역경들 때문에 한층 강해진 여인을 탄생시킨다. 진영은 생존을 위해서 항거하고 삶을 능동적으로 모색하는 인물의 형상화는 이 소설의 커다란 의의라 하겠다. 이처럼 생존이 우선인 도덕이 땅에 떨어진 사회에서의 미망인의 삶은 최소한의 도덕성이라도 희구하게 된다. 그러나 누구 하나 상대방의 삶에 관심을 갖고 베풀어주는 삶을 영위하지 못한다. 그러한 불신적인 시대야말로 바로 모랄이 필요한 시대임을 인식시켜주는 박경리의 이 소설은 전후에 새로운 삶을 지향하려는 개인을 통해 사회의 전망을 내비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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