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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자줏빛 소파> 조경란론 - 고립 그리고 각성된 소통욕망

소설책

by 북스톰 2023. 9. 26.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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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자줏빛 소파> 조경란론 - 고립 그리고 각성된 소통욕망

 

조경란 소설의 특질

    소설은 이른바 세계 탐색에 다름 아니다. 캐릭터는 삶이라는 대상 속에 놓여 있되 완전한 소통의 조건이 아니기에 무언가를 끊임없이 찾아 헤맬 수밖에 없다. 더욱이 군중 속에서 고립되었거나 타자로부터 소외되었을 경우 개체는 절망으로부터의 탈출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부대끼는 인간관계, 타자와 자기의 이해, 사회의 변화와 그에 따른 가치관의 변모, 타자의 욕망과 자아의 욕망에 관한 관찰 등등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의 상황과 사물에 봉착된다. 조경란의 소설은 이러한 관찰 교착상태에서 시작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나로부터 그리고 나와 가까운 타자로부터 과찬을 시작되고 인간관계의 면밀한 파악이 조금씩 열리는 것이다. 조경란 소설에서의 인간관계는 대단히 갈증을 느끼도록 설정되어 있으나 단 한번도 촉촉한 관계를 성사시켜 목마름을 해갈시켜주는 예가 없다. 그것은 갈증 해소보다는 그 갈증의 원인과 추이를 살피는 철저한 관찰자의 모습 때문에 야기된 비극적 상황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의 소설에서 나타나는 그 참담한 현실의 모습은 일련의 추이를 만들고 서사구조의 튼실한 윤곽을 만들어낸다. 이점은 삶의 비극성을 순간으로 포착한 오정희나 신경숙에 비해 상당량 산문정신과 서사체계가 뚜렷한 증좌가 된다.

 소통욕망 캐릭터의 비극성 

조경란의 <나의 자줏빛 소파>에서의 화자는 시내 대형 서점에서 명함을 파는 하는 일을 하던 젊은 여자로서 타자와의 소통을 간절히 원한다. 그녀는 타자의 진실이 아닌 허명을 파는, 말하자면 현대사회의 가식적인 일면을 명함을 통해 드러내며 우연히 알게 된 남자와의 관계를 꿈꾸지만 실제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녀는 무료하고 나른한 고양이처럼 소파 위에서 누워 잠들거나 잠든 것 같아도 누군가를 기다리며 누군가 있다면 그곳이 설령 수심 수천 미터의 해저라도 뛰어내릴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인 것이다. 그녀의 소통은 결국 실제 대화보다는 편지라는 매체를 통해 이루어진다. 그러나 그 편지는 일방적이어서 실제로 대화소통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녀가 만든 (편지를 전하는 사람들의 모임)은 실제로는 대화소통 채널에 불과한 것이다. 그녀에게 타자라는 개체는 광화문 네거리를 지나간 누군가의 모습은 사람들 이 그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네에게 타자는 인간이하나 인간이 아닌 대상으로 인지되기도 한다. 가령 태포 안에 몇 주 된 다른 동물들 가령 여우원숭이나 닭이나 인간의 모습이 구별되지 않을 정도로 그녀는 인간에 대한 구체적인 교섭이 없었다. 그리고 그녀는 기껏 거북이를 기르는 취미 밖에는 없는 것이다. 그것도 자신을 귀찮게 하지 않는 친구로서의 거북이가 그녀로서는 가장 잘 어울리는 친구인 셈이다. 때문에 스스로 원하는 교통욕망은 자기 모순적이다. 그녀의 소통욕망을 가로 막고 있는 것은 그처럼 스스로 타자와의 관계망을 능동적으로 펼치지 못하는 운명적이고 성격적인 모순을 배태하고 있기 때문에 실제로 그녀의 삶은 비극적이 되고마는 것이다.

 

<나의 자줏빛 소파>의 비극성 극복

비극적 전망에 한가닥 빛을 주는 조경란 소설의 마지막 부분은 삶에의 의지를 역설적으로 내비치고 있다.

.....편지를 접으려다 말고 저는 새로 펜을 고쳐 잡습니다. 아직도 저에게는 남겨진 일이 있습니다.

어떤 문구가 좋을지 영 알 수 없습니다. 언젠가 당신이 그랬던 것처럼 잎이 지고 나면 꽃이 피고 꽃이 지고 나면 잎이 지고 마는 식물이 있습니다. 잎과 꽃들은 서로를 그리워하지만 결코 만날 수 없습니다. 여기 편지를 전하는 사람들의 모임으로 연락주시겠습니까?”라고 해야할까요 제가 당신의 글월을 본 것이 벌써 언제였던 가요 모든 것이 까마득하기만 합니다.(PP.34-35)

그녀가 누군가에게 전하는 편지는 그것이 수없이 반복되었지만 답장은 이내 쉽사리 오지 않는 모양이다. 그리고 그녀는 점점 힘을 잃고 가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런데 이 소설에서 눈에 띄는 은근하고도 집요함 힘은 계속해서 시도되고 그침이 없는 또 하나의 이름으로 반복되어 타자에게 보내는 메시지인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그것을 스스로 알아차리고 있다 말하자면 고립을 향해 각성된 자세를 취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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